[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28)두 개의 한라산-김희정

[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28)두 개의 한라산-김희정
  • 입력 : 2019. 10.03(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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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가면

두 개의 한라산이 있다

하나는 70년 전에 죽은 영혼을 품었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기억하는 마음을 안고 산다

산을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데

끝내 내려오지 못한 사람들

해마다 이맘때면

산자들이

산 이곳저곳에 한라산을 뿌린다

그런 날이면 한라산은

한라산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70년 한(恨)을 풀어 놓는다

한라산은 그렇게 한라산을 만나

기일(忌日)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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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한라산 무장대가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다. 1948년 10월 17일에 해안으로부터 5㎞ 이상 벗어난 지역으로 통행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이러한 통행금지는 한라산을 전면 통제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미군정은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대규모의 군대, 경찰, 서북청년단 등 반공단체를 증파하였다. 여기에 맞서는 주민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대항하였다. 무장대는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극우 반공청년단체의 탄압에 대한 반감과 저항, 남한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와 조국의 통일독립, 반미구국투쟁을 무장 항쟁의 기치로 내세웠다.

국군 무지개부대와 협조하여 한라산 무장대 토벌을 마무리하기 위해 제주도경찰국 국장 이경진의 재임 중인 1952년 11월 제100전투경찰사령부(산하 6개 대대)가 설치되었다가 다음해 1월 초에는 한라산 잔여 무장대 토벌 부대인 신선부대(神選部隊, 부대장 경감 허창순)가 생겨났다. 관음사에 본부를 둔 신선부대는 산하 6개 중대 병력을 6개 지구에 투입하여 한라산 잔여 무장대 토벌에 나섰다. 그 후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사실상 7년 7개월간 지속되면서 엄청난 유혈사태로 비화되었다. 본격적인 토벌로 무장대가 소멸되자 소개민들이 자기 마을로 돌아가 안착하게 되었다. 이어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입산 금지가 전면적으로 해제됐다. 한라산 개방 1년 후인 1955년 9월 21일에 신선부대는 백록담 북측에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를 세웠는데, 기념비에는 "영원히 빛나리라. 제주도경찰국장 신상묵 씨는 4·3사건으로 8년간 봉쇄되었던 한라 보고를 갑오년 9월9일 개방하였으니 오즉 영웅적 처사가 아니리요. 다만 본도는 기여한 자유와 복음에 감사할지어다"란 격문이 새겨져 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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