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한라에서 백두까지] (3)백두산 화구호와 왕지

[2019한라에서 백두까지] (3)백두산 화구호와 왕지
천상의 화원 속 마르형 화구… 제주 화산지질과 유사
  • 입력 : 2019. 10.02(수)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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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의 산정화구호처럼 백두산에도 화구호가 여럿 있다. 한라와 백두는 유사한 화구호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한라산에 물장올, 사라오름, 소백록담 등이 있다면 백두산에는 소천지, 왕지, 적지, 곡지, 원지, 화산 화구 등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화구호는 화산지질 측면에서 한라와 백두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이 중에서 탐사단이 찾은 화구호는 왕지(王池)다.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인 마르형 화구 왕지강희만기자

왕지는 백두산 화구 서남쪽 13㎞ 지점, 해발 1500m 정도에 자리하고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왕의 전설과 관련돼 있다. 청 태조 누루하치가 젊은 시절 이곳의 물을 먹고 살아났다는 전설이 전한다.

왕지 가는 길은 버스를 갈아타는 연속이다. 서파 산문에서 버스로 출발하여 천지 등정 후 금강대협곡 환승장에서 하차해 왕지 행 셔틀로 갈아타야 한다. 셔틀버스로 20분쯤 이동한 후에는 다시 소형버스에 타서 3분 정도 가야 진입부가 나타난다. 왕지는 이곳에서 1.8㎞, 걸어서 30분이 채 안 걸린다.

왕지를 알리는 안내판

왕지에 이르기까지는 천상의 화원을 연상케 한다. 광대한 야생꽃밭을 거니는 느낌이랄까. 자주꽃방망이, 투구꽃, 꿩고비, 야생오미자꽃, 야생 당근 등 지천으로 널린 꽃향기에 취하다보면 어느새 왕지에 다다른다.

왕지는 천상의 화원 끝자락에 비밀의 호수처럼 숨겨져 있다. 멀리서 보면 수목이 우거진 평지 같은 모습에 불과하다. 하지만 불과 10여m 정도 되는 야트막한 언덕 아래는 깊이 50~60m 정도로 움푹 패였다. 마르형 분화구에는 화구호가 자리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서귀포 하논분화구가 마르형 분화구를 대표한다. 거의 원형에 가까운 화구호 바닥에는 검푸른 물이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수 직경은 60~70m, 면적은 약 2000㎡ 정도 될까. 19년 전 본보 탐사팀이 처음 찾았을 당시에는 없던 데크시설이 호수 주변을 한바퀴 돌 수 있도록 설치돼 있다. 왕지 화구륜 주변에는 백송과 사스레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제주의 숨골처럼 형성된 현무암 지대

왕지 화산체 주변 바닥은 제주의 곶자왈지대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곳곳에 현무암 틈새가 발달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곳을 통해 지하로 물이 빠지는 것이다. 현무암에다 제주의 숨골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현무암이 광활하게 펼쳐진 용암대지 위에 빈번한 화산분출로 형성된 백두산 화산체의 형성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화산지질 차원에서 한라-백두의 교류연구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왕지로 향하는 고산 화원지대, 뒤에 하얗게 빛나는 백두산 정상부가 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백두산 천지 화산체는 압권이다. 8월인데도 백두산 정상부는 마치 하얀 눈이 내려앉은 것과 같은 모습이다. 눈처럼 흰 백두산 정상부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포인트라 할 만하다. '백두'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윤형기자

[전문가 리포트]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마르 분화구 '왕지'… 제주 하논이 대표적"

왕지는 마르(maar)였다. 분화구 호숫가에 내려서는 순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20년 전에도 이곳을 방문했으나 그땐 알지 못했다. 이 야트막한 습지가 화산 분화구인지, 부끄럽지만 전혀 몰랐다. 화산지질학적 감각이 한참 부족했다고 밖에는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여간 이번에는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마치 시험 볼 때 당연한 정답을 쉽게 찾아내는 것처럼. 자체 분석한다면 화산지질을 딱 보면 아는 데 무려 20년이 걸린 셈이다.

마르는 응회환에 속하는 작은 화산으로 수성화산에 속한다. 형태적으로 화구가 특이하다. 분화구 속에는 드물게 물이 고여 있어 화구호(火口湖)라고 한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할 것은 원래 마르가 반드시 물이 고여 있는 화구호가 아니어도 된다는 점이다. 물이 없는 화구도 마르라고 부른다. 마르라는 명칭이 탄생한 독일 불칸아이펠에 가보면 물이 없는 마르가 많다. 물론 넓은 면적의 호수를 갖는 마르도 있다.

마르의 형태적 분류는 간단하다. 화산체 외륜산의 높이에 비해 분화구가 더 깊어 지하로 깊게 패인 화산체를 마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하논' 분화구가 대표적이다. 서귀포 삼매봉에서 보면 하논은 주변 도로에서 낮은 언덕인데 반하여 그 속에는 깊은 분화구가 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형태의 화산체를 마르라고 부른다.

왕지 외륜의 바깥 높이는 매우 낮아 불과 10m에서 15m 정도이다. 반면 화구 안쪽의 높이는 화구 호수의 바닥까지 깊이가 보통 30∼40m 정도이고 깊은 곳은 50∼70m나 된다. 전형적인 마르의 지형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분화구의 습지 규모는 길이가 150∼200m로 타원형의 호수를 이루고 있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탐방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왕지 가는 길은 고산지대의 현무암질 용암대지로 약 길이 1500m의 목도가 설치되어 있다. 고산 습지의 다양한 야생화가 만발하여 고산화원이라 부른다.

왕지 마르와 접하여 작은 오름이 하나 있다. 동행한 박용국 전 장백산자연박물관장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따로 부르는 이름은 없고 그냥 '왕지산'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주변 고산지대의 용암평원은 제주에서 빌레라고 부르는 현무암질 용암류가 분포되어 있다. 마치 곶자왈 지대의 암석과 닮았다.

왕지 마르의 형성조건은 백두산의 기반암이 현무암질 용암대지인 것과 관련이 있다. 백두산 화산체는 매우 넓으며 해발 600m에서 1100m에는 현무암의 용암대지가 펼쳐져 있다. 1100m에서 1800m의 현무암질 용암고원은 아래의 용암대지가 융기한 지형이다. 1800m에서 2750m의 정상까지는 조면암의 화산 원추체라고 한다. 왕지가 마르의 수성화산체로 분화할 수 있었던 조건은 현무암질 용암고원에서 고산습지가 넓게 펼쳐진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지 주변에는 제주의 오름과 같은 작은 화산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화산추'라고 부른다. 약 50만년 전인 플라이스토세 중기에 생성된 백두산 중심 분출의 산물로서 164개의 작은 화산체가 분포되어 있다. 이때 제주도에서도 활발한 화산활동이 있었다. 왕지를 마르형 분화구라고 하는 논문이나 자료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아마 처음으로 왕지를 백두산 서파 고산지대에서 현무암질 용암대지의 마르형 분화구로 보고한다.

후원: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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