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정성… 한·일 민간 4·3위령제의 바탕"

"진심과 정성… 한·일 민간 4·3위령제의 바탕"
日 쓰시마 위령제 주최·주관
공양탑 세운 에토 유키하루
4·3한라산회 나가타 이사무
  • 입력 : 2019. 09.30(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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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공양탑 건립 에토 유키하루씨, 4·3한라산회 나가타 이사무 고문.

그들은 정성을 말하고, 진심을 이야기했다. 제주4·3의 넋들을 낯선 땅에서 위무하고 있는 두 사람, 일본 쓰시마섬(대마도)에 살며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쓰시마·제주 위령제를 주최한 에토 유키하루(江藤幸治, 62)씨와 일본인들로 구성된 제주4·3한라산회의 나가타 이사무(長田勇, 71) 고문이다.

에토 유키하루씨는 1950년 전후 쓰시마로 떠밀려온 수 백구의 한국인 시신을 지역민들과 수습했던 부친의 마음을 받들어 사고만(佐護灣)에 공양탑을 세웠다. 아버지가 손수 화장이나 매장했던 고혼들을 달래줘야 한다는 스님의 권유로 부친의 별세 직후인 2007년 5월 건립했다. 그 때만 해도 4·3과 연관된 걸 몰랐고 2014년 재일 김시종 시인과 나가타 고문이 주도한 첫 쓰시마 위령제 이후 알게 됐다.

"2004년부터 병세가 악화된 아버지는 앞날을 예감했던지 한국인 시신에 얽힌 사연을 자세히 들려줬다. 지난 역사가 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들이 어디서 왔든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겼다."

봄날 길일에 부부가 소박하게 치르던 공양탑 의식은 위령제로 확대되며 9월로 옮겨졌다. 작년부터 공양탑 주변에서 진행되는 위령제에 대해 그는 "감격스럽다"며 "살아있는 한 아버지의 뜻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오사카에 거주하는 나가타 고문 역시 지금의 위령제를 만들었다. 2008년 60주년 4·3추념식에 모인 1만명의 유족과 제주도민을 보며 충격을 받았고 책에서 읽었던 4·3을 실감한 일이 계기였다.

수 차례 제주를 방문하며 4·3을 배우고 알아가던 중에 어느날 김시종 시인을 통해 수장 희생자들이 쓰시마까지 흘러갔다는 말을 들었다. 1949년 4·3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던 김 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꺼내며 그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나가타 고문은 "수장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기억조차 빼앗긴 채 남겨졌다는 점에서 4·3사건의 잔인성을 상징한다"며 2014년 대마도 위령제를 열었고 그 뒤 공양탑의 존재를 알고 2회부터 에토씨와 공동으로 치러오고 있다.

2008년 50여명이던 한라산회 회원은 현재 120명까지 늘었다. 회원 개개인이 비용을 부담해 매년 위령제로 향한다. 나가타 고문은 "진정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한·일 민간 공동 위령제를 시작했다"며 "예산을 받으면 오고, 받지 못하면 안오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위령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쓰시마=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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