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이라는 숫자 버려야 正名 가능"

"4·3이라는 숫자 버려야 正名 가능"
제주4·3연구소, 27일 창립 30주년 기념 세미나 개최
김영범 "1948년 4월 3일 이전 역사를 가리고 있어"
외세 좌절시킨 승리의 역사… '제주 독립항쟁' 제안
  • 입력 : 2019. 09.27(금) 21:39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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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는 27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창립 30주년 기념 제주4·3 도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송은범기자

제주4·3의 '정명'을 짓기 위해 이제는 '4·3'이라는 숫자를 놓아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4·3이라는 숫자가 1948년 4월 3일 이전의 제주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과 그 맥락을 가려버리는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4·3연구소는 27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창립 30주년 기념 제주4·3 도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기억과 비원 속의 4·3, 정명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기조발표에 나선 김영범 대구대학교 교수는 "4·3이라는 기호를 이제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당시 미국은 제주를 군사지기화 하려는 탐욕을 보였고 이승만도 선선히 넘겨줄 의사를 내보였지만 그 기도는 결국 좌절됐다"며 "항쟁의 열화 같은 기세, 놀라울 만큼의 도민 결속력, 고립무원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끈질지게 이어가는 저항의 지속성… 비록 '빨갱이 섬'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무수한 희생을 치르긴 했지만 제주도와 제주민은 스스로를 지켜내는 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라고 제주4·3을 평가했다.

 이어 "하지만 제주인은 이 성공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면서 "승자가 된 반공국가의 독한 질타에 끝모를 패배감과 허무감, 바닥없는 자기모멸과 열등의식에 갇힌 채 어디서도 발설 못하고 내색조차 금기여서 가슴 속에 담아만 놓는 '로컬기억'으로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4·3이라는 숫자는 1948년 4월 3일 이전에 있었던 일들과 맥락을 가리고 있다"며 "3·1발포사건으로 비롯된 제주민의 민족자결 독립의 숨결과 기운, 미군정통치 전면거부의 3·10총파업, 전면탄압이라는 대결구도로 생긴 '제주자위항쟁', 억압이 제주민 말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제주만의 자립·자존을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해방과 독립의 항쟁이 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제주항쟁은 완전한 민족항쟁만 아니라 제주독립의 의미도 내재시킨 것이기 때문에 '제주 독립항쟁'이라고 해야한다"며 ▷제주도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제2의 민족독립운동 ▷육지부의 강권침탈자들에 맞선 대(對) 중심부 항쟁 ▷고립된 채 죽음을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벌여간 대미항쟁을 '제주 독립항쟁'이 내포한 3가지 의미라고 소개했다.

 한편 기조발표가 끝난 이후에는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와 김은희 4·3연구소 연구실장, 오승국 4·3평화재단 사무처장, 강남규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 이사장이 토론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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