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수형생존인 2차 재심 '본격화'

제주4·3수형생존인 2차 재심 '본격화'
27일 4·3도민연대서 재심 나설 수형생존인 첫 만남
"형무소 도착해서야 형량 알았다"… 억울함 풀어내
다음달 15일~18일 사이 재심 청구서 제주지법 제출
  • 입력 : 2019. 09.27(금) 15:46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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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도민연대는 27일 도민연대 사무실에서 '4·3수형생존인 2차 재심 청구 회의'를 개최했다. 송은범기자

두 번째 재심 재판에 나설 제주4·3수형생존인들이 처음으로 만나 오랜 세월 숨겨뒀던 억울함을 풀어냈다.

 제주4·3도민연대는 27일 도민연대 사무실에서 '4·3수형생존인 2차 재심 청구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재심을 청구할 수형생존인 8명 가운데 장병식(89) 할아버지와 김두황(91) 할아버지가 참석했으며, 김묘생(91) 할머니 등 6명은 병환 등으로 가족이 대신 자리를 채웠다. 수형생활을 한 기간은 적게는 10개월에서 많게는 1년이다.

 이들은 제주4·3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영문도 모른 채 군·경에 붙잡힌 뒤 모진 고문을 받고 육지 형무소에서 억울한 수형생활을 해야만 했다. 혐의는 '내란죄' 혹은 '국방경비법 위반'인데, 형량도 형무소에 도착해서야 듣는 등 엉터리로 재판을 받았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제주로 온 장병식 할아버지는 "고문으로 인해 허리를 심하게 다쳐 사흘간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터로 끌려 갔다"며 "조금 있더니 '다 끝났다'는 소리가 들렸고, 이후에는 배에 태워져 목포를 거쳐 인천형무소로 보내졌다. 형량도 인천에 도착해서야 금고 1년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상에 이런 재판이 어디있느냐"면서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수술을 2번이나 받았고, 의사도 '너무 험악해 이제 손을 댈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재심 재판을 결심하면서 수술을 감행, 다행히 경과가 좋아 오늘 제주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7일 본보와 인터뷰를 했던 김두황 할아버지는 "1948년 마을사람의 모함으로 성산포경찰서에 연행, 모진 고문을 받은 뒤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며 "이후에도 마을에서 폭도라고 멸시를 당한 것은 물론 자식들도 연좌제로 인해 수없이 경찰서에 끌려다녀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날 회의에서는 10월 15일~18일 사이에 제주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또 변호인으로는 1차 재심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던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김세은 변호사가 맡기로 했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이들 모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씌어진 누명은 벗고 가야되지 않겠나"라면서 "1차 재심 재판에서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이번 재판은 짧게는 1년, 늦어도 1년6개월 내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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