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0)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0)
  • 입력 : 2019. 09.19(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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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1-2. 삼미동 차이나타운




"아주 오래 전에 대룡반점 불난 거 기억해? 자네 고등학교 다닐 때야."

"그럼요. 문예부 행사 끝나면 늘 거기서 짜장 먹었었죠."

"난 그때 방화범을 봤어."




"머리가 안 돌아가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허어 참."

"세상 이치가 다 그렇죠. 그러니 앞만 보지 말고 주변도 좀 살피세요."

용찬은 씁쓸하게 웃으며 손수건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사무실을 살폈다.

둘둘 말아놓은 시위용 현수막과 유인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사무실에는 간사라는 남녀직원 둘이 근무하고 있었다. 대호는 안쪽에 합판으로 막아 마련된 자신의 사무 공간으로 용찬을 안내했다. 사무처장 명패가 놓여 있는 책상 위에는 책과 서류 뭉치들이 쌓여 있었고, 그 앞 낡은 소파와 탁자 위에도 시위용 손 팻말과 전단지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대호는 그것들을 대충 정리하고 용찬을 앉게 했다.

"이거 누추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밖을 향해 김 간사에게 커피를 부탁했다.

용찬이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죄송은 무슨. 여기 오너는 누구야?"

"이사장은 의사인데 물주고, 내가 움직여요."

"운영 자금은?"

직설적인 질문에 대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기사 쓸 거예요?"

"꺼리나 되나?"

"시민운동에 동참하는 회원들 회비와 능력 있는 이사들 분담금으로 운영해요."

"그걸로 어떻게 각종 집회를 주도해? 관에선 지원 없어?"

"관에서 지원받으면 NGO가 아니죠?"

"서울에선 말이야, 관이나 산하단체에서 계획하고 추진하는 각종 프로젝트를 수주 받아 운영하면서 간접 지원받는 것으로 아는데?"

"역시 기자의 촉은 못 속이겠네. 그런 거 없으면 간사들 월급 못 줘요,"

"그리고 시위와 관련된 업체들로부터 비밀리에 뒷돈을 받기도 하겠고?"

커피를 들고 온 여자 간사가 탁자 위에 잔을 놓으며, '뭐 이런 무례한 놈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용찬을 정색하며 바라보고 나갔다.

"그런 영업상 비밀 얘긴 그만하고 커피나 드세요."

대호는 일어서더니 책상으로 가서 서류 봉투를 들고 왔다. 그 속에서 사진들이 나왔다.

"자 이거 보세요. 이번 달 두목회 모임 있던 날 대룡반점에서 몰래 찍은 겁니다."

대호가 옆자리에 앉아 사진을 넘기며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 사람이 전직 지사 전형진입니다. 두목회의 두목이고 현직 도지사를 움직이는 핵 파워를 가진 자에요."

"그리고 이 자는 장석규. 인동건설 대표인데 로비로 관급공사를 따내죠. 덩치가 큰 공사는 서울 대형건설사와 연결해서 각종 공사를 수주하고 있는 잡니다. 지금 삼미동 차이나타운 공사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용찬은 장석규의 사진을 보자 미간을 찡그렸다. 과거 불 지르고 도망가던 모습과 중국 유력자에게 아첨을 떨던 모습, 그리고 자신을 빨갱이 자식이라고 욕하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떠올랐다.

"나쁜 새끼"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욕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는 사람이에요?"

대호의 물음에 용찬은 '아차'하고 생각했으나 이내 체념했다.

"이거 자네만 알고 있어. 어디 가서 발설하지 않을 거지?"

"신의와 의리 없으면 시민운동 못 하죠. 무슨 일이에요?"

용찬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래 전에 대룡반점 불난 거 기억해? 자네 고등학교 다닐 때야."

"그럼요. 문예부 행사 끝나면 늘 거기서 짜장 먹었었죠."

"난 그때 방화범을 봤어."

그 말에 대호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용찬을 쳐다봤다. 용찬은 장석규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로 이 사람이야."

대호는 의아해 하며 눈만 깜박였다.

"내가 봤어. 불나던 밤, 대룡반점 앞을 지나는데 이 사람이 거기서 나오더라고. 그리고 잠시 후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솟아올랐어."

"신고했어요?"

용찬은 고개를 저었다.

"그땐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어. 이거 절대 비밀이야."

대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사진을 보이며 설명했다.

"이 자가 홍민태죠. 전형진 지사 비서실장 출신인데 연락책이면서 브로커에요. 각종 업체로부터 이권 청탁을 받고 현직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로비해서 돈을 벌어요."

용찬은 사진을 건네받고 찬찬히 살피며 기억에 넣었다.

"이 사람은 대학교수인 나오룡이에요. 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많은 단체와 연결되어 있고, 인력 뱅크를 만들어 지사의 인사를 좌지우지해요. 중앙 정계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개방형 직제 공모는 물론이고, 나오룡 거치지 않으면 승진이 불가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막강 파워를 가지고 있죠."

"왜 그렇게 막강한 힘을 주었지?"

"박 지사 괸당이에요. 고종 사촌이랍니다."

용찬은 사진에 시선을 꽂은 채 커피를 홀짝이며 한마디 했다.

"관상을 보니 욕심이 많은 상이네."

"이 자는 서길준. 부동산 업자 출신 재선 도의원이에요. 제주개발 관련 많은 입법에 앞장섰는데 직간접적으로 이권을 챙겼어요. 지금 자연환경위원회 위원장이죠. 그리고 이 사람이 경제학자 여창희 교수로 제주도개발프로젝트 TF팀에 참여하면서 차이나타운 건설과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배경이론을 제공한 사람이죠."

대호는 다시 두 장의 사진을 찾아 올려놓고 설명했다.

"이 사람은 병원장 이대현인데 이 모임 물주에요, 식사비는 거의 이 사람이 내는데 도당 후원회장으로 차기 국회의원을 노리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주경제문화연구소의 법률자문역인 변호사 김형우죠. 이렇게 여덟 명이 매월 둘째 목요일 만나 골프 치고 밥 먹으며 제주의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면 그것이 곧 법이 되죠."

대호가 사진을 거두며 설명을 마치자 용찬이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도정 농단 세력들이군."

"맞아요. 이 사람들이 제주도를 말아먹고 있어요. 이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사법당국에 고발해서 응분의 죄 값을 치르게 해야 해요."

대호는 노골적으로 분기를 드러내며 얼굴까지 붉혔다.

"그런데 무슨 증거가 있어야지?"

"취재해 보세요. 소문엔 전 지사가 중국 자본의 뒤를 봐주고 돈을 챙긴다는 말이 있어요."

"실체를 확인하기 전엔 기사 한 줄도 쓸 수 없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지?"

"찾으면 나올 거예요. 참, 형 삼미동에 가 봤어요?"

"아니. 왜?"

"지금 삼미동 개발문제가 대법원까지 갔거든요. 고법에서 일부 승소했는데 변호사의 말로는 희망이 보인데요."



"야! 이 개새끼들아. 내 땅 내놓아. 이 사기꾼들아."

용찬은 지나가다 물벼락을 맞은 듯 어이가 없었다.

"그럼 저 강도질한 물건 사러 왔냐? 이 날도둑놈들아. 너희들도 한통속이야."




아직 봄인데도 여름이 성큼 다가선 듯 태양은 뜨거웠다. 그래도 가끔 바다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으로 기분은 상쾌했다.

용찬은 대호의 사무실을 나와 삼미동 건설현장으로 향했다. 차이나타운이 조성되는 삼미동에 들어서기 전부터 도로변에는 '삼미동 토지수용 원천무효' 등 차이나타운 건설을 반대하는 각종 구호가 적힌 현수막들이 낡고 찢어진 채로 나풀거리는 것을 보았다.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현수막은 많아졌고 '제주도 땅 중국에 팔아먹은 놈 때려 죽이자'는 등 구호도 살벌해졌다.

삽화=고재만 화백



도로를 따라 건설현장으로 들어서는데 헬멧을 쓰고 경광봉을 든 경비원이 앞을 막으며 다가와 방문 목적을 물었다. 용찬은 분양사무실에 문의할 게 있어서 왔다고 둘러댔다.

"주민증 좀 보여주세요."

"주민증은 왜 보자는 거요?"

"상부에서 제주도민은 출입 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요?"

"들어오면서 보셨잖아요. 시위하는 사람들 때문이죠."

용찬은 기자증을 꺼낼까 하다가 괜히 오해를 살 것 같아서, 주소지가 서울로 된 주민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경비원은 그제야 거수경례까지 하며 용찬을 들여보냈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거대한 공룡 같은 콘크리트 집채 여러 개가 연이어 나타났다. 페인트가 발리지 않은 앙상한 건물 뼈대와 공중에 매달린 장비들의 생경한 모습은 마치 외계에서 온 괴물들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멘트 냄새가 몰려들면서 숨이 콱 막혔다. 코를 막으며 뒤로 돌아서니 눈앞에 확 트인 바다가 정원처럼 펼쳐졌다. 멀리 하나도가 편안하게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용찬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소형카메라를 꺼내 현장의 모습을 몇 컷 촬영했다.



다시 차를 몰아 현장 입구를 막 빠져 나가려는데 밀짚 패랭이를 쓴 초로의 남자가 도로변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두 팔을 벌려 용찬의 차를 막아섰다. 차가 멈추자 그는 주변을 기웃거리며 무엇을 찾는 듯했다. 용찬은 직감적으로 돌멩이를 주워 던질 거라는 생각에 차의 시동을 끄고 급히 내렸다. 그러더니 그가 행동을 멈추며 벌건 얼굴로 욕을 해댔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내 땅 내놓아. 이 사기꾼들아."

용찬은 지나가다 물벼락을 맞은 듯 어이가 없었다. 아마도 현장 관계자로 오인한 모양이다.

"아저씨, 저 관계자 아니에요."

"그럼 저 강도질한 물건 사러 왔냐? 이 날도둑놈들아. 너희들도 한통속이야."

손에 잡은 돌멩이를 던질 기세에 놀라 용찬은 황급히 기자증을 꺼내 내밀며 그를 제지했다.

"진정하세요. 저는 기잡니다."

그는 용찬이 내민 기자증을 눈을 비비며 확인하더니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억울해. 하이고 못 살아."

용찬은 그를 설득하여 차에 태우고 가까운 동네 음식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막걸리 한 대접을 소리를 내며 단숨에 들이키더니 안주를 먹을 생각도 않고 손등으로 입을 쑥 문질렀다.

"어르신, 무엇이 그리 억울하세요?"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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