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조미영의 제주마을탐방] (15)옛 마을 특색 간직한 외도동

[2019조미영의 제주마을탐방] (15)옛 마을 특색 간직한 외도동
개발의 과도기서 자연문화 보존과 소통으로 도약
  • 입력 : 2019. 09.17(화) 00:00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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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인구유입 돕는 좋은 물·환경
수정사·월대·망루대 등 역사로 남아
경관과 어우러지며 탄생한 외도팔경
옛 모습 곳곳 변했지만 여전한 인정




제주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7~9㎞ 지점의 마을 외도동은 해발고도 100m 이하의 해안에 자리한다. 철기시대의 고인돌과 탐라시대의 주거지 등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물과 환경이 좋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인구유입이 많은 동네이다. 2019년 현재 인구는 8272세대에 2만1571명이다.

연대와 외도포구를 잇는 산책로

외도동은 현재 내도동과 도평동이 행정동으로 편입돼 있다. 조선시대 제주목 중면 소속의 마을에서 외도리 그리고 외도1, 2동으로 분리됐다가 다시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원래는 각자의 특성을 갖는 자연마을들이 있었다. 우렝이, 절물, 수정동, 제맹이 4개 마을을 합쳐 외도1동이라 하고, 월대동과 연대동 두 마을을 합쳐 외도2동이라 한다.

1300년 전 수정사(水精寺)라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수정동은 당시부터 마을이 형성됐을 것으로 본다. 절물 역시 사수(寺水) 즉 절의 물이 있던 동네라는 뜻으로 수정사와 연관이 깊다. 수정사는 고려 충렬왕 26년 원나라가 제주를 지배할 당시 지었던 절로 서귀포시의 법화사, 삼양의 원당사와 더불어 제주의 3대 사찰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하지만 조선 중기로 내려오며 쇠퇴하다 불이 난후 폐사됐다. 하지만 여전히 절물마을 주변에는 수정밭, 납세미물 등 옛 수정사에 속했던 마을의 흔적들이 구전으로 남아있다.

절물마을 공원

월대동은 월대(月臺)라는 이름을 따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도근내과 외도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월대는 지형이 반달같고 물에 비친 달의 풍광이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 시인묵객들이 이곳에서 달이 뜨기를 기다리며 즐기는 누대(樓臺)라는 뜻에서 월대라고 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월대를 낀 주변의 풍광은 아름답다. 오래된 해송과 팽나무 고목이 깊은 그늘을 만들며 하천변 산책로를 고풍스럽게 한다.

연대동은 과거 망루대가 있었던 동네를 뜻한다. 김통정 장군이 항몽전을 할 당시 고성에 성을 쌓고 봉화로 신호가 오고 갔는데 도두봉에서 봉화를 올리면 그 신호를 연대망루에서 받아 봉화를 올리고 다음으로 수산봉에서 봉화를 올려 신호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또 이 마을에는 마이못이라는 해안습지가 있다. 말의 귀를 닮아서 이름 붙여진 담수와 바닷물이 섞이는 곳으로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며 고니 등 희귀철새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바다로 흘러가는 외도천

이 같은 마을의 역사와 뛰어난 경관이 어우러져 외도팔경이 탄생했다. 그 첫째가 월대피서이다.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월대천에서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이른다. 제2경은 야소상춘이다. 멋진 경치를 끼고 상춘객들이 노니는 풍경을 말한다. 제3경은 마지약어이다. 물이 좋아 고기가 많아 즐거움이 넘친다는 뜻이다. 다음은 우령특송이다. 쇳동산의 소나무 풍경이 뛰어남을 이른다. 제5경은 대포귀범이다. 도근대 포구로 들어오는 돛단배의 풍광으로 저녁노을과 함께 만선으로 귀향하는 어부들의 마음을 담은 풍경이다. 제6경은 광탄채조이다. 연대 너븐여에서 해녀들의 물질하는 풍경을 말한다. 제7경은 사수도화이다. 절물의 넒은 들에 벼가 꽃을 피워 풍요로운 수확의 광경을 상상케 한다. 마지막 제8경은 병암어화이다.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한 해변에서 어부가 달빛에 노 저으며 그물을 놓는 풍경을 말한다.

과거 시인묵객들이 달맞이를 했던 월대.

외도팔경의 모습을 상상하면 과거의 외도동을 짐작할 수 있다. 넓은 농토와 풍성한 어촌의 풍경이 연상된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개발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도로가 포장되고 아파트가 들어서 과거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곳도 많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변한 건 아니다. 지금도 1500가구 이상이 농사를 짓고 있고, 2개의 어촌계에 23척의 배가 있다. 농수축산업이 공존하며 마을사람들끼리 인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여전히 월대의 깊은 소나무들을 따라 물이 흐르고 곳곳의 용천수는 맑은 물을 뿜어낸다.

어쩌면 과도기의 중간에 와 있다. 이제부터는 시대에 맞는 변화가 요구된다. 그래서 다각적인 노력들을 하고 있다. 동네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생활문화센터를 열어 동아리방으로 활용하고 이주민과 원주민이 어울릴 수 있는 한마음 축제와 월대천 축제 등을 통해 소통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외도동의 자연과 문화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외도물길 20리를 정비해 탐방로를 개척했다. 이런 노력들이 외도동민의 자부심을 키우는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인터뷰]


"시골 정서 속 이주민과의 소통 노력"
김형진 주민자치위원장


외도동은 아직 시골마을의 정서가 남아있는 곳이다. 그래도 새로운 유입인구가 많아지고 있어 소통을 위해 노력중이다. 최근 개관한 생활문화센터는 동네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각종 문화프로그램은 물론 동아리방 형태로 활용돼 마을분들이 꾸준히 이용한다.

외도동의 대표적 축제는 월대천축제이다. 매년 7월에 열리는데 찾는 이들이 많다. 주민자치프로그램에서 배출된 팀들이 참여해 더욱 의미있다. 이외에도 한마음 축제를 하는데 원주민은 물론 이주민도 많이 참여해 서로 어우러지는 자리가 되고 있다.

마을의 자랑거리로 외도물길 20리가 있다. 하천과 바닷길을 따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걷기 좋게 정비해 동네 분들의 산책로는 물론 관광객들이 문화와 경치를 즐길 수 있길 바란다. 3년째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정비관리하고 있다.



"외도물길 20리로 마을 진가 알려야"
소원준 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



외도 토박이로 항상 마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오랜 역사 유적은 물론 뛰어난 풍광을 갖춘 곳이다. 그 외에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운동장과 수영장, 유도회관 등이 있다. 외도실내수영장의 경우 원래 선수용 시설이지만 외도 어르신이 땅을 기증한 터에 지어진 덕분에 외도주민들은 일정시간대에 활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용천수들이 여전히 좋다. 절물마을의 납세미물은 동네 분들의 목욕탕으로 이용된다. 제주도 최고 오랜 축구대회인 8·15축구 대회가 있는데 이를 주도하는 팀이 외도동 축구회이다. 올해로 67회를 맞았다. 1953년부터 이어진 셈이다. 월대천의 풍광은 물론 남쪽의 구석구석 경치도 어우러지는 외도물길 20리 길을 통해 외도동의 진가를 알려주고 싶다.



"늘어나는 인구에 알맞은 정비계획을"
김학철 외도동장



제주시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마을중 하나이다. 10년 전에 비해 유입인구가 약 45%가량 늘었다. 도시계획에 의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거점마을이 됐다. 특히 신혼부부나 젊은 층 거주자가 많다. 그래서 외도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증가하고 있다. 약 1600명으로 제주시에서 세 번째로 학생 수가 많다. 반면 농어업인의 수도 꽤 있다. 감귤과 밭농사 그리고 일부는 어업에 종사한다. 그래서 주민센터는 도시의 기능과 농어촌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늘어나는 인구에 맞는 도로확보 및 정비와 월대천 종합정비계획이 잘 수행돼 마을 발전에 이바지되길 바란다. 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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