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26)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26)
  • 입력 : 2019. 08.22(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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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0-2. 제주에 부는 갈바람



저는 제주도에 우리 중국인 일만 명을 보낼 계획입니다.
제주도 안에 아담한 중국 마을을 세우는 거지요. 그 작은
섬에서 만 명이 똘똘 뭉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왕금산이 허리 굽혀 인사하며 앞으로 나오자 천정에서 프로젝션 영사막이 내려왔다. 그는 유창한 중국어로 해설을 시작했다.

"저는 대한민국 제주에 살고 있는 화교입니다. 헤드테이블에 앉아 계신 왕치영 고문님은 제 부친의 숙부 되십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오래 전에 해외 개척의 꿈을 안고 한국의 막다른 섬 제주도까지 가셨습니다. 그리고 후손인 저는 성공하여 제주홍보대사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삽화=고재만 화백



누군가의 박수를 신호로 장내가 박수와 환성으로 가득 찼다. 왕금산은 다시 허리를 넙죽 숙여 절했다.

"고맙습니다. 저는 한족의 후손으로서 무궁한 자부심을 가지고, 랴오닝 그룹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주도가 어떤 곳인지 영상을 보겠습니다."

금산이 신호를 보내자 장내가 어두워지고, 제주의 민속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면서 제주도의 풍경 영상이 투사됐다. 금산은 장면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차이나타운이 조성될 삼미동 지역의 모습과 바다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하나도가 비추어졌다.

"여기가 여러분이 여생을 즐길 수 있는 삼미동입니다. 앞바다에는 하나도가 그림처럼 떠 있어 매일 여러분에게 아침 인사드릴 겁니다. 힐링과 자손대대로의 웰빙을 위해 제주에 별장을 마련하시기를 권유합니다. 감사합니다."

금산의 멘트를 끝으로 장내가 다시 밝아지자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띵하오','뷰티플','원더풀' 등의 소리가 들렸다. 금산이 임무를 마치고 탁자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 샤오첸이 일어나 환호하며 맞이했다.

"당신 정말 최고야. 너무 멋져."

금산은 만족한 듯 아내의 손에 입을 맞추며 앉았다.

다시 리밍타오가 마이크를 들었다.

"자 보셨죠? 한국의 제주도는 무척 아름다운 섬입니다. 여기에 여러분들을 위한 빌라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제주 삼미동은 기반시설 정비를 다 끝냈고 건물 공정률이 50%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은 분들은 사회 각층의 지도자들이시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으신 분들입니다. 요즘 우리 위안화가 어떻습니까? 위안화가 약세면 이를 방어할 실물자산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부동산 가격은 너무 비쌉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동의하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센스 있으신 분들은 해외에 부동산을 마련합니다. 우리의 토지는 나라 것이라 소유할 수 없지만, 한국은 외국인의 재산 소유를 허용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재산을 증식하기에 최적지입니다. 그리고 제주는 무비자로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고 영주도 가능합니다. 한국은 근래에 부동산투자 이민제도를 허용했습니다. 5억 원 이상의 재산을 취득하시고 5년이 지나면 영주권도 나옵니다. 저는 제주도에 더 좋은 땅을 많이 확보하여 우리 중국인 일만 명을 보낼 계획입니다. 제주도 안에 아담한 한족 마을을 세우는 거지요. 그 작은 섬에서 만 명이 똘돌 뭉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의 설명은 연설로 변했고 장내의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냈다. 리쩌라이 회장도 흐믓한 얼굴로 바라보다 손뼉을 쳤다. 리밍타오의 설명은 계속됐다.

"저는 앞으로 글로벌 경영을 하겠습니다. 랴오닝은 이제 해외로 진출할 겁니다. 제주도의 땅은 껌 값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면 삼미동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노른자 땅을 얼마든지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투자가치가 높은 인천, 부산, 강원도 땅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고 일본으로도 진출할 생각입니다. 요즘은 무기 로 싸우는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 중국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를 제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여러분."

한 기업의 CEO가 바뀌면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 순리다. 결국, 그날 왕치영 씨도 고문직에서 물러났다.

팔순 잔치를 겸한 투자설명회는 대성공이었다. 리밍타오는 이후 상하이와 홍콩의 최고급 호텔에서 그 지역의 재력가들을 초청하여 고급 음식을 대접하며 성황리에 '한국제주도투자설명회'를 개최했다.



"재들 값싼 노동력 때문에 우리 아줌마들 일자리 없어졌다구요."
"저 애들 한 달 월급이 얼만 줄 알아요? 중국 4년제 대학 졸업한
교사 평균 월급의 두 배 이상을 받아요."





차를 몰고 도청 기자실로 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차도로 뛰어들었다. 용찬은 브레이크를 밟고 클랙슨을 눌렀다. 흰 비닐 쇼핑백을 손에 든 젊은 여성이 돌아보지도 않고 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건너편에는 한 무리의 중국 관광객들이 면세점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싸움을 하는 것으로 오인 될 정도다.

'아 맨날 저러면 이 동네 사람들은 시끄러워 어찌 살까?'

또 다른 버스가 면세점 건너편 도로변에 멈추더니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안내원의 지시도 무시한 채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자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차에서 클랙슨을 울려 댔지만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유유히 무단 횡단했다.

"이런 xx"

용찬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저절로 튀어 나왔다.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보니 마치 중국의 어느 도시 거리인 것처럼 온통 중국어 간판 천지다.



제주에 부임한 용찬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담당 출입처마다 찾아다니며 신고하고, 이어지는 회식과 사람들 얼굴 익히고, 현장을 뛰어다니느라 이삿짐 정리할 여유도 없었다. 제주에 온 후 한 달이 지나자 비로소 일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도청에서 취재를 마치고 정문을 나서는데 들어갈 때는 못 봤던 사람들 두어 명이 건너편 현수막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었다. 차를 잠시 멈추고 차창을 열어 현수막 내용을 보니 '삼미동 개발 특혜 취소하라'고 쓰여 있었다. 흰 모자를 눌러 쓴 채 피켓을 든 청년이 차창 밖으로 고개 내밀고 유심히 살피는 용찬을 한참 노려봤다.

용찬은 차를 도로 한쪽에 세웠다. 본능적으로 수첩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데 흰 모자가 피켓을 내리면서 길을 건너왔다. 혹시나 모를 테러를 경계하면서 코트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는데 흰 모자가 용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다가섰다.

"혹시, 용찬이 형? 아 맞네. 야 이거 얼마 만이예요?"

용찬은 그를 알아보지 못해 내미는 손을 잡으며 쭈뼛거리는데 그가 모자를 벗으며 신분을 밝혔다.

"왜 모른 척해요? 나 대홉니다."

그제야 그가 고향 후배 문대호인 것을 알았다.

"아, 문대호? 이거 몇 년 만이지? 근데 너 많이 변했네?"

용찬은 맞잡은 손을 격하게 흔들며 해후를 반가워했다.

고등학생 시절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 온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그와 가끔 어울렸었다. 그때 그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외국 시인의 시집을 들고 다녔고 말수도 적은 모범생이었다. 신문사 문화부에 일하면서 그가 얘기했던 랭보와 베를레느, 말라르메 같은 상징주의 시를 이해하게 됐다. 명함을 보던 대호가 친구처럼 거침없이 말했다.

"중앙지 기자면 월급도 많이 받겠네? 형, 한 잔 사요."



대호는 신제주 로터리 부근 호텔 아래쪽에 잘 다니는 식당이 있다며 용찬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 식당은 점심이 지난 시간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빈자리를 찾아 앉으니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온통 중국어였다. 들어올 때 흘깃 본 상호는 분명 '25시 뼈감탕'집이었는데 잘못 보았나 생각했다.

"여기 중국 식당이야?"

"아뇨.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식당이에요.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 제주 맛집으로 소개되어서 저녁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 있어요."

"그래?"

"가성비도 좋고 맛있어서 저도 친구들과 가끔 와요."

물병과 물수건을 들고 종업원이 다가왔다. 주문을 받는데 한국어가 서툴렀다. 대호가 돌아서서 가려는 그녀에게 반말로 물었다.

"어디서 왔어?"

"선전"

심천은 용찬이 작년 여름에 홍콩 휴가 갔다가 들른 곳이었다.

"아, 홍콩 옆에 있는 심천 말이지? 나도 가봤어."

그러자 종업원이 표정을 활짝 펴며 말을 걸었다.

"그러면 가무극 봤나?"

"그럼. 코끼리가 등장하고 레이져 쇼가 일품인 감동적인 무대였지."

용찬의 말에 종업원은 자랑스러운 듯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나 어릴 때 가무극 일했어. 호호호"

"이게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한국말 더 배워."

대호는 못마땅한 듯 인상까지 쓰며 나무랐다. 종업원은 무안해 하며 금방 허리를 숙여 사과 했다.

"왜 그래? 친숙함의 표현인데. 자."

용찬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건네자, 종업원은 두 손으로 덥석 받아들고 절을 하며 '고맙습니다' 말하고 돌아섰다.

"재들, 돈 주지 마요."

"왜?"

"재들 값싼 노동력 때문에 우리 아줌마들 일자리 없어졌다구요. 저 애들 중엔 비자 없이 와서 몇 년씩 눌러 사는 불법 취업자도 많아요."

"돈벌이가 되나 보지?"

"되다 뿐이겠어요?. 저들끼리 sns로 취업 정보 공유하며 협정가격 요구해요. 저 애들 한 달 월급이 얼만 줄 알아요? 4년제 대학 졸업한 교사 평균 월급의 두 배 이상을 받아요."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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