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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20)3일 평화ㅡ4·3, 두 청년 이야기-오승철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08.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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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장부의 말은 죽지 않는 법이지

한낱 봄 꿈 같은 약속도 약속이라서

연둣빛 4·28 만남, 그 약속도 약속이라서



깃발 따라 짚차 한 대 쏙 들어간 구억초등학교

뒷산 조무래기들 꼼짝꼼짝 고사리 꼼짝

첫날밤 신방 엿보듯 훔쳐보고 있었다



조국이란 이름으로 공쟁이 걸지 말자

저 하늘을 담보한 김익렬 9연대장과 김달삼 인민유격대 사령관

산촌의 운동회같이 박수갈채 터졌다지



불을 끈 지 사흘 만에 다시 번진 산불처럼

다시 번진 산불처럼 그렇게 꿩은 울어, 전투중지 무장해제 숨바꼭질 꿩꿩, 오라리 연미마을 보리밭에 꿩꿩, 너븐숭이 섯알오름 4·3 평화공원 양지꽃 흔들며 꿩꿩, 그 소리 무명천 할머니 턱 밑에 와 꿔- 엉꿩

칠십 년 입술에 묻은 이름 털듯 꿩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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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3이 발생하고 25일 만인 4월 28일, 무장대 총책 김달삼(金達三)과 김익렬(金益烈) 국방경비대 9연대장은 구억초등학교에서 평화협상을 맺는다. 72시간 내 전투 중지, 점차적인 무장해제 등의 조항이었다. 두 사람은 '4·28 협상'을 통해 사태 해결에 합의하지만, 사흘 후인 5월 1일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이 '오라리 방화사건'을 저지르고, 이를 경찰과 미CIC(방첩대), G-2(정보참모부)가 오히려 무장대의 방화로 뒤집어씌움으로써 평화협상은 결렬되고 만다. 우익청년단이 오라리 마을을 방화하고, 5월 3일에는 미군이 경비대에게 총공격을 명령함에 따라 협상은 깨어진다.

결국 5월 5일 수뇌부 회의에서 김익렬은 조병옥 경무부장과 충돌하기에 이르고 제14연대장으로 전출되었다. 그는 중장으로 예편한 뒤, 1969년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제주4·3사건을 미군정의 감독 부족과 실정으로 말미암아 도민과 경찰이 충돌한 사건이며, 관의 극도의 압정에 견디다 못한 민이 마지막으로 들고일어난 민중폭동이라고 본다. 당시 제주도경찰감찰청장, 제주군정관, 조병옥 경무부장, 군정청 딘 소장 등 한 사람이라도 초기에 현명하게 처리하였다면 극소수의 인명피해로 해결 될 수 있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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