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정의 목요담론] 언어가 부여하는 의미

[오수정의 목요담론] 언어가 부여하는 의미
  • 입력 : 2019. 08.08(목) 00:00
  • 김도영 수습기자 doyoung@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몇 년 전에 일본 오키나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유구국'이라는 독립국가였던 오키나와는 17세기 초 현재 가고시마현의 반식민지 상태에 있다가 19세기 후반에 모든 자치권을 빼앗겨 일본국으로 복속된 곳이었다.

지금은 해군기지가 있고, 태평양전쟁 당시 전초기지였으며, 일본 본토와는 다른 섬 문화를 지닌 곳이기에 제주와 너무나도 닮은꼴을 느끼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여행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키나와 민속촌인 류쿠무라에서 오키나와 언어로 진행된 민속공연을 본 경험이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에 미친 듯이 열을 올리던 일본이 지역어를 금지시킨 이후로 오키나와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게 되자 몇몇 구술가능자를 중심으로 재현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 공연을 보면서 마치 소설가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라는 단편 소설에서 등장하는 '소수 언어 박물관'이 생각났다.

소수 언어 박물관은 1000여 개의 멸종위기에 처한 언어들만을 보호하기 위하여, 특별구역인 박물관에서 영혼 없는 언어전시물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이 소설이 생각난 이유는 오키나와 역시 주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과거의 마지막 언어를 공연이란 매개채를 통해 구술하는 것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순히 구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파생되는 문화를 언어를 통해 형상화시키고 표현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즉 문화기록의 핵심이 언어인 셈이다.

유엔에서 이런 측면에 관심을 갖고 올해를 '세계 토착어의 해'로 지정한 이유도 한 언어가 없어짐으로써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 기억, 표현을 보존할 수 있는 문화 다양성의 소멸의미를 말해준다는데 있다. 결국 언어의 보전은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일이고 함께 가야하는 동반자인 것이다.

어찌 보면 다양한 문화의 전파와 교류에 의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언어가 사라지고 생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장구한 역사와 함께 만들어진 토착어가 근현대에 와서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흔들리고 있다.

유네스코 소멸 위기 언어 중에 하나인 제주어 역시 수 천년간 매일 숨 쉬듯 사용해 왔지만 고도의 정보화, 평준화교육 등으로 인해 수도권 중심의 언어로 너무 많이 희석되어 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제주인의 삶이 담겨있는 제주어의 원형을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 부류가 고령의 어르신들 뿐 이라는 것이다.

아무리'국어기본법'에 따라 국립국어원에서 지역어를 조사하고, 지역어 지도를 만들고, 언어문화 행사를 한들 우리 삶과 동반하지 않으면 소수 언어 박물관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제주어를 보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탐라를 거쳐 제주를 형성해 온 우리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오늘날의 정체성으로 가져가자는데 있는 것이다.

단순히 소수 언어 박물관에서 보여주듯 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언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화자가 되자는 것은 아니다. <오수정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05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