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조미영의 제주마을 탐방] (4)도시형 농촌마을 하귀1리

[2019 조미영의 제주마을 탐방] (4)도시형 농촌마을 하귀1리
이주열풍 전 도시인들 자연과 함께 휴식 꿈꾸게 하던 곳
  • 입력 : 2019. 08.06(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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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여년새 갑절이상 확대돼
일주도로 경계로 남북 풍경 대조
삼별초와 4·3 열풍 등 아픈 과거
"인구증가 파급효과 위해 노력을"





하귀1리 해안마을

일주도로를 타고 하귀1리 마을회관을 찾아가는 길. 도시는 날로 팽창해 시 외곽의 거리들까지 온통 집들로 빼곡 채워지고 있다. 신축되는 건물들이 마을 간의 경계와도 같았던 공백을 자꾸 허무는 탓에 자칫 한눈팔다가는 마을입구를 놓치기 십상이다.

제주시 경계의 끝 지점인 하귀리는 한때 전원주택을 꿈꾸는 이들의 로망과도 같은 곳이었다. 도시 중심에서 한발 물러서서 여유를 부리다가도 필요에 따라 도시로 빨리 편입돼 들어갈 수 있기에 도시와 농촌의 경계 지점인 이 곳은 매력적인 곳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제주이주 열풍이 있기 훨씬 전부터 이곳은 도시인들이 자연과 함께 휴식을 꿈꾸게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하귀 1리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2006년 하귀1지구 도시개발사업으로 대규모 공동주택이 건설되고 2010년 준공이후 1단지 445세대, 2단지 246세대가 입주했다. 현재 하귀1리는 2500세대에 인구수는 6200여명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마을이 두 배 이상 커졌다. 기존에 마을에 살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온 것이다. 주민들의 생활상도 바뀌었다. 과거 농어업을 중심으로 하던 생활이 아닌 도시형 농촌이 됐다. 마을 회관 옥상에서 내다보면 하귀1리의 변화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일주도로를 경계로 북쪽으로는 옹기종기 집들이 작은 골목을 끼고 모여 있다. 드문드문 밭도 보인다. 하지만 일주도로 남쪽으로는 반듯한 건물들이 서 있다. 멀리 아파트 단지와 함께 상가들이 형성돼 있다.

4·3화해상생의 상징인 영모원

하귀 1리의 역사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귀1지구 택지개발 당시 발굴조사를 시행한 결과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움집과 우물 그리고 사용했던 그릇들이 확인됐다. 이후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탐라국 시대인 약 2000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귀1리의 자연마을 대부분은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해안가의 바위에서 염전을 관장했다고 해 붙여진 관전동과 해안주변의 동굴이 마치 고팡같이 생겼다해 이름 지어진 고수동. 1270년 삼별초군이 군항으로 이용했었다고 하는 군항동 등이 대표적이다. 안남동, 남주동은 1980년과 81년에 각각 신설된 마을이다.

택지개발로 변화된 마을전경

마을의 역사가 깊은 만큼 그 생채기들도 곳곳에 남겨져 있다. 마을 지명 곳곳에서 과거 삼별초군과 여몽연합군의 항전의 기록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를 짐작하게 한다. 상귀리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 바굼지오름은 파군봉이라고도 불린다. 적을 감시하기에 좋은 조망이기에 삼별초군의 전초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 봉우리와 해안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전투가 있었겠는가? 사장밭, 활왓, 옥쇄왓 등의 지명이 구전되는 이유다.

제주4·3 당시에도 지독한 열풍이 지나갔다. 희생자만 300여 명이 넘는다. 하지만 하귀리 사람들은 용서를 선택했다. 2003년 하귀리민들은 자발적인 성금을 모아 영모원을 조성한다. 4·3희생자들과 군, 경 희생자 그리고 호국 영령을 모두 함께 위령하는 공간이다.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는 손을 잡으라"는 비문이 뜻 깊은 곳이다. 하귀 1, 2리 청년회는 매년 영모원 제초작업에 같이 참여하며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을포구로 사용되는 군항포

하귀일초등학교는 2012년 3월 개교한 학교이다. 인구급증으로 아동인구가 늘어나며 신설된 학교다. 개교당시 9학급 180명에서 현재 22학급 540여 명으로 증가했다. 읍면단위의 학교들이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마을에 학생들이 많다는 것은 활력이 넘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에너지가 좋은 파급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모두가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하귀1리는 제주시와 애월읍의 경계, 어촌과 농촌의 경계, 아픔과 화해의 경계 등을 조화롭게 버무려왔다. 이제 원주민과 이주민의 경계, 신구세대의 경계, 여유와 숨가쁨의 경계에서도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여행작가>

[인터뷰 / 양공택 이장]"지역민·이주민 소통 기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변화가 있는 마을 중 한 곳이다. 택지개발로 신도시가 새로 하나 생긴 셈이다. 휴먼시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격히 불어났고 거기를 중심으로 상가들이 조성되고 있다. 처음에는 인근에 농협마트가 들어설 때만해도 마을사람들은 대형마트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잘 될 것이라는 예상은커녕 유지를 걱정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주변으로 장례식장과 복지센터 등을 신축하며 사업을 확장중이다. 마을이 커지자 초등학교도 들어서고 실내체육관이 조성돼 실내수영장등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점이다.

하지만 택지 개발된 지역으로 이주하신 분들은 마을 소속감이 많이 떨어진다. 마을체육대회 등의 행사를 통해 연대감을 높이고 싶지만 쉽지 않다. 하귀 1리가 하나의 마을로 뭉쳐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옛 농촌지도소 건물이 사용을 하지 않아 방치돼 있다. 이를 리모델링해 활용하고자 한다. 1층은 주민자율공간으로 조성해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위한 강의실 등으로 쓰고 2층은 주민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작은 도서관과 청소년 동아리방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하고자 한다.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기존의 지역민과 이주민과의 소통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고 하귀를 찾는 관광객도 늘어나며 교통이 혼잡해졌다. 하지만 기존의 마을길들이 좁아 통행에 어려움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방통행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인근 상가들에 피해가 예상돼 반발도 많다.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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