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절대고립'의 삶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절대고립'의 삶
제주도내 시청각장애인 1000명 추정
"암흑 천지로 된 감옥에 있는 것 같아"
전국 최초 제주서 지원사업 시행 기대
  • 입력 : 2019. 07.29(월) 17:01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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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 시청각중복장애인 김용재(48)씨가 수화로 강연을 하고 있다. 뒤에는 김씨가 수화로 얘기한 것을 통역하는 스크린인데 '저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시청각장애인'이라고 쓰여있다. 송은범기자

"마치 암흑천지로 된 감옥에 있는 것처럼 집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점자공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점자정보단말기는 650만원이라는 엄청난 고액임을 알고 선뜻 구매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용재(48)씨는 한두살 때 고열로 청각장애를 앓게 됐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둑에 입문해 전국청소년바둑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의 성과를 일궈냈다. 그러나 33살이던 2003년 '망막증후군'과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아 점점 시력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2014년에는 듣지도, 보지도, 말할 수도 없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이 됐다.

 '절대 고립'이라는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김씨는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점자정보단말기의 존재를 알게 됐으나, 비싼 가격 탓에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점자읽기 시험'에 합격하면 정부에서 95%의 구입비를 지원해준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김씨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시험에 합격했다. 김씨는 처음 점자책 한 페이지를 읽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지만, 6개월 후에는 25분까지 단축했다.

 현재 김씨는 단말기를 이용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한국 시청각장애인을 대표해 일본과 호주 등에서 열리는 관련 콘퍼런스에 참석하는 등 복지확대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시청각장애인이 세상과 단절되면 감정과 감각기능, 두뇌 회전 활동이 현저히 저하되고, 결국에는 신경질, 의욕 상실,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며 "시청각장애인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절대 고립에서 벗어난 과정을 29일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 털어놨다. 이날 전국 최초로 제주에서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지원 사업이 시작되기 때문인데, 그는 10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를 모두 외운 뒤, 눈을 감을 채 수화로 얘기했다.

 

이날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는 향후 시청각장애인에게 지원될 점자단말기 등 보조기기에 대한 시연회도 열렸다.

이번 지원 사업은 제주도가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시청각중복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 서비스 조례'를 제정·시행하면 이뤄졌다. 제주에는 약 1000명의 시청각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억5000만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에서는 시청각장애인들의 장애 발생시기와 원인, 연령 등에 따른 실태조사 및 사례관리는 물론, 촉수어, 수어, 점자, 지문자 등 의사소통을 위한 교육도 이뤄진다. 또한 독립적인 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요리기술·조리도구 사용, 청소, 보행 훈련 및 점자단말기 등 보조기기에 대한 보급도 진행된다.

 제주도농아인복지관 관계자는 "시청각중복장애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세상과 단절되는 가장 혹독한 장애"라며 "이번 사업을 계기로 사각지대에 놓였던 이들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선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는 시청각중복장애인 서비스 지원 사업에 대한 출범식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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