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신의 하루를 시작하며]어떤 졸업장

[강문신의 하루를 시작하며]어떤 졸업장
  • 입력 : 2019. 07.24(수) 00:00
  • 김도영 수습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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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술이란, 빈한한 그 젊음의 욕구불만이었을까? 시작하면 밑도 끝이 없었으니, 전생의 한이었을까?

모 시인은 매번 "팔 아판 도저히 더 못 따르쿠다"며 절레절레 했었다. 인생을 모르면서도 우리가 살 듯이, 술 맛을 모르면서도 그냥 막 마신 거지만, 그 술의 병폐는 진즉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끊으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 해마다 정초 땐 제1의 목표가 술 끊는 것이었다. 마음을 다 잡고 바둥거려도 고작 한 보름…다시 시작하면 그간 참았던 술 마저 다 마시곤 하는 악순환이었다.

술로 인해, 그렇고 그런 일에 휩쓸리기도 여러 번, "술이 뭔 일을 내리라" 늘 경계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다. 걱정하는 아내에겐 "사업상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대지만 "그만헌 사업은 술 안 먹어도 얼마든지 헙니다"에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밤새 마셨어도, 농장엔 가야 한다. 기다리는 일꾼들을 어찌하는가. 그런 날, 그들과 더불어 종일 일하며 독려하며 뛰어도 거뜬했었다. 어쩌면, 나이 40까지 링에 오른 권투선수, 그 체육관 관장의 체력과 근성이 밀어붙인, 격렬한 인파이팅의 시절이었다. 일과 후, 밤들면 의래 또 마시곤 하던 그 시절.

그러던 어느 날 60을 넘은 어느 새벽, 언제나처럼 12인승 스타렉스 가득 일꾼들 싣고 농장 가는데 졸려, 자꾸 졸려…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 그 직감에 전율하였던 것이니, 어금니를 질끈 씹었다.

한 많은 술! 끊은 것, 기어이 졸업한 것이다. 그 졸업장 받은 후의 일상은 확 변했다. 심신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아내의 잔소리도 없고, 잠도 실컷 자고, 이제사 맨 정신으로 농장엘 간다. 가뿐한 그 출발에 힘이 절로 솟는다. 늘 대하던 길도 농장도 나무도 다들 달리 보이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흠뻑 느끼는 것이니, 실로 경이다.

술 마시는 친구들은 "술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한다. 재미? 무슨 재미였던가? 가라난 말 가락가락 그 탐욕의 밤을 다 채우고 나면, 속 쓰림과 허망 외에 남는 게 더러 있던가? 단지 하나, 노래방에서 말똥말똥 제정신에 노래할 때 좀 거시기 할 뿐, 그 외의 99가 다 좋은 것이다. 그 졸업 후 10년, 악물고,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결단의 시점임을 아는 까닭이다.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책 한 권씩 보내려고 한다. 모임에 한 번도 참석 못했지만, 전화 오고, 문자 오고, 최근 회원명부도 만들어 보내온 게 고마운 것이다. 그 명부를 펼쳐보며 "아~ 다들 늙었구나" 서울 부산 울산 미국 일본 등에서 나름의 꿈과 사연으로 한 세월 열심히들 살았겠거니… 더러는 알듯 모를 듯한 이들, 가뭇한 옛 기억을 더듬으며 주소를 적는다. 그 명부 말미의 '고인이 된 동창들'에는 벌써 50명이 넘었다. 이제 이렇게 되는구나. 바로 옆자리의 고천숙, 그 눈빛 맑던 아이의 이름에 복받친다.

추적추적 연일 장맛비다. 신축하우스 포장길 따라 죽~진홍(眞紅)의 철죽을 심으리라. 그길 아득 끝닿은 데 석파시선암(石播詩禪庵) 있거니. 인생이 뭣이냐? 모른다, 모른다 해도, 갈 데까진 가는 거, 뚜벅뚜벅 그 길을 가고 또 가는 거.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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