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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이방익 표류현장을 가다
[제주사람 이방익 표류현장을 가다Ⅱ] (2)입팔도고진
다리 아래 도도한 강물… 고색창연 골목에 화려했던 시절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07.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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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령 내려와 20리쯤 만수교
강남으로 향하는 제일의 요로
"지금 입팔도고진 가능성 높아"
항주 가는 길에 강랑산 봤을까


1797년 음력 3월 26일. 이방익 일행은 산봉우리가 하늘에 닿을 듯 험악한 검각과 다름없던 선하령 정상에 무사히 다다른다. 정상에는 보화사라는 현판을 건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면에 푸른 대나무가 울울창창하고 기이한 새소리와 이상한 짐승이 수풀 사이로 왕래하는 곳이었다. 인가가 멀리 떨어진 듯 속세 밖에 솟은 보화사에서 이방익 일행은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다. 술과 소찬으로 기운을 얻은 그들은 무사 귀환을 비는 중들의 전송을 받으며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탐방단 일행이 입팔도고진 입구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정상에서 간신히 내려와 20리쯤 가니 만수교라 하는 다리에 이르는데 다리 아래에는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가니 성첩과 성 밖에 언월도와 장검을 무수히 세워 놓았다. 물어본즉 이곳은 강남으로 가는 제일 요로인데 진장이 지키고 있다고 일러준다."

이방익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순한글 '표해록'에는 선하령 하산 길에서 만난 만수교가 기록되어 있다. 이방익 일행이 그랬듯 탐방단도 선하고도를 오르고 난 뒤 오래된 마을에 들렀다. 천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입팔도고진(입八都古鎭, 녠팔도고진)이었다.

안내문은 이곳에 대해 복건성에서 절강성으로 향할 때 맞닥뜨리는 첫번째 집진(集鎭)이라고 했다. 집진은 비농업 인구를 위주로 하는 성시(城市)보다는 작은 규모의 거주 구역을 일컫는다. 지방의 중심으로 진에는 대체로 성벽이 있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입팔도 상점가에서 공예품을 제작하고 있다.

입팔도고진은 군사적 요충지였고 무역 거래의 중심지였다. 명·청 시기에는 정성공이 아버지 정지룡을 따라 이곳에서 관문을 지켰다. 특히 복건성에서 들어오는 각종 물건들이 입팔도에 잠시 부려져 절강성 상인들에게 건네지는 통로가 되었다. 이 지역에 모여사는 성씨만 140여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는 한때 번성했던 과거를 말해준다. 입팔도를 오가며 부를 쌓은 상인들이나 화물을 운반하던 이들이 정착해 살면서 성씨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의 국가5A급 여유경구로 잘 정돈된 골목길을 따라 유서깊은 가옥이 즐비했다. 외양만으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 깊은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 중심지를 걷는 동안 두부요리가 유명한 지역임을 말해주듯 후각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밀려들었다.

입팔도고진 골목길. 명·청 가옥 등 오래된 건물들이 화려했던 과거를 말해준다.

'평설 이방익 표류기'의 저자인 권무일 작가는 이방익이 '표해록'에서 적어놓은 '만수교'가 있는 지역이 지금의 입팔도고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권 작가는 "입팔도는 군사 주둔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이방익이 언월도와 장검을 무수히 세워놓았고 진장이 지키고 있다는 내용과 맞아 떨어진다"며 "현재 초입에는 주파교(珠坡橋) 팻말이 붙었지만 다리를 지나면 만수궁(萬壽宮)이라는 묘우(廟宇)가 보인다. 이 때문에 주파교는 만수교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고 했다. 만수궁은 오래전 어떤 이가 하천을 건너는 사람들을 위해 교량을 만들었고 그걸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연암 박지원의 '서이방익사'를 보면 절강성 선하령, 입팔도고진을 차례로 거쳐간 이방익은 선하고도를 넘어온 상인들이 잠시 숨을 돌리던 협구참(峽口站)에 닿는다. 협구를 나오면 절강성 구주부 강산현 제하관(衢州府江山縣齊河館), 서안현 부강산(西安縣浮江山), 용유현(龍游縣) 등으로 여정이 이어진다.

강랑산 등반객들이 300m 높이의 두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협곡인 일선천을 지나고 있다.

음력 3월 28일, 이방익은 포성현을 지나 어느 점막에 들러 유숙한다. 그곳에서도 표류민에 대한 대접은 극진했다. 죽염과 다과를 내오고 수박씨를 꽃그릇에 담아 주는 걸 보고 이방익은 상빈에 대한 대우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이튿날에는 우리나라 점막과 같은 곳에 안내됐다. 방 가운데 평상을 놓고 음식을 차렸는데 관부의 풍부함에 못지 않았다. 송환길은 고단했지만 낯선 이들의 친절은 고향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잠시 달래줬다.

항주가 가까워지는 길, 이방익 일행은 강을 따라 이동한다. 배 안에서 자며 이방익은 푸르게 흐르는 물과 첩첩한 청산을 본다. 그 노정에 하늘로 뻗어있는 바위같은 강랑산을 눈에 담았을지 모른다. <자문위원=권무일(소설가) 심규호(제주국제대 석좌교수) 글·사진=진선희기자>



두 봉우리 사이 드러난 협곡
하늘로 향하듯 강랑산 밟다


제주 탐방단은 선하고도를 답사한 이튿날, 강랑산(江郞山, 장랑산)에 올랐다. 이방익 일행은 눈으로 스쳤겠지만 220여년 뒤 그의 흔적을 뒤따르고 있는 우리들은 강랑산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중국 국가5A급 관광경구인 강랑산은 절강성, 복건성, 강서성의 경계 지점에 있다. 2010년 8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700여곳에 이른다는 중국의 단하(丹霞) 지형 경승지 중 하나다.

강랑산에는 '강랑사절'이라 불리는 4가지 절경이 있다. 삼편석(三片石), 일선천(一線天), 랑봉천유(郞峰天游), 강랑산운해(江郞山雲海)를 말한다.

해발 500m 삼편석은 한자어 천(川) 모양처럼 3개로 나눠진 고봉(孤峰)을 칭하는 말로 중국의 최고 기봉(寄峰)으로 꼽힌다. 고대에 강씨 형제가 산에 올랐다가 여기에서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일선천은 아봉(亞峰)과 영봉(靈峰) 사이에 형성된 협곡으로 양쪽 높이가 300m에 달한다. 랑봉천유는 3500개 계단을 하나씩 디디면 도착하는 정상을 일컫는다. 강랑산운해는 구름과 안개 낀 날의 풍경이 선경(仙境)과 같다해서 붙여졌다.

강랑산에 도착한 날, 가느다란 빗줄기가 흩뿌렸다. 오락가락 하던 비날씨는 정상으로 향하며 차츰 갰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는 동안 하늘이 가까운 듯 천국의 문이 어디쯤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게 이들 절경을 만나고 왔다. 하산 길에 안개 자욱한 강랑산은 신비감을 더했다. 이방익이 선하령 정상 보화사에서 느꼈던 마음이 그랬을까.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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