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12) 김용길의 시 '제주해협'

[제주바다와 문학] (12) 김용길의 시 '제주해협'
  • 입력 : 2019. 07.12(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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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 앞바다 풍경. 서귀포 김용길 시인은 '제주해협' 등이 실린 '비바리 연가'이래 줄곧 섬과 바다를 노래해왔다.

“늙은 목마만 남고 바다는 종일 운다”
첫 시집 ‘비바리 연가’ 수록
해조음 타고 달려오는 제주
소금기 배인 슬픈 생의 파편


그에게 제주도 여인은 소금기에 절은 해풍 냄새를 지닌 사람들이다. 어릴 적부터 원초적으로 여겨지는 그 내음을 맡으며 자랐다.

'자갈을 굴리며/ 달려오는 해조음을 들어라/ 목마를 탄 제주여, // 두꺼운 바다의 껍질을 깨뜨려라.// 새벽빛이 기어나오고 있다/ 바다 위/ 맑은 수증기로 피어오르고 있다.// 번들거리는/어체에서/물거품에서// 봄날/ 따뜻한 아지랑이처럼/ 모락 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섬 가득히/ 햇살은 눈가루처럼 뿌려지고/ 제주는/ 어둠 속을 떠난다.// 늙은 목마만 남고/ 파도에 칭칭/ 감기운 채/ 바다는 종일을 울어댄다.'('제주해협' 전문)

김용길(1947~) 시인은 1966년 '문학춘추'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 '서귀포에서 두 번째 등단'한 시인으로 일찍이 문단에 발디딘 그의 첫 시집은 '비바리 연가'(1980)다. '제주도(島)를 노래한 시집'이란 문구가 달린 '비바리 연가'는 짠내음 품은 시편들로 채워졌다. 책머리 '제주남단 서귀포구'에서 시를 띄워보낸다고 했듯, '제주해협'을 포함 곳곳 섬과 바다에 대한 노래가 흐른다.

시인은 수평선 너머 동터오는 바다에서 '목마를 타고 오는 제주'를 본다. 어둠이 걷히는 자리,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으로 향하려는 몸짓이었다. 무탈하게 파도를 넘어 미지의 세계와 만날 수 있었을까. 종일 울어대는 바다에서 고단한 여정을 짐작할 뿐이다.

'햇빛에 몰린 바다'에서 '사지를 찢기우는 아픔'을 ('제주 바다') 느꼈던 시인은 '비바리 연가'를 시작으로 '정풀이', '서귀포산조', '서귀포 서정별곡', '바다와 섬의 이중주' 등 바다를 떠나지 못한 채 일련의 시집을 묶어냈다. '초라하면 어떠랴/ 작고, 외롭고/ 때로 버림받고, 천대하고/ 쳐다보지 않은들 어떠랴'('제주섬')고 읊은 시인은 '소금기처럼 하얗게 말라붙은 슬픈 생의 파편'을 붙잡아 '가난의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과 한풀이를 담는다.

'서귀포 서정별곡'(1995)을 펼치면 그 응어리진 마음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미루어 알 수 있다. '한식날 유채꽃밭을 지나며-제주 사월의 노래'에서 시적 화자는 '화산섬 그늘 계곡마다/ 그대 눕던 자리/ 불쑥불쑥 억새 순들이/ 땅을 뚫어내는데/ 억장 가슴을 치는/ 사월의 한덩어리'와 마주해 '이제 그만 가슴 씻어 내시구려'라고 다독인다.

시인이 그려낸 '제주인의 한에 들어있는 질량 대부분이 제주 여인과 관계가 있다'(김병택)는 평처럼 그의 시에는 특히 어머니, 해녀, 아내의 눈물이 비쳐든다. '우리 어멍 바당질/ 섧고 설운 고생질'('우리 어멍 바당 타령·1)을 목도한 시인은 서로 어깨 비비고 '둥그대 당실, 둥그대 당실' 얼싸안고 춤추며 맺힌 한숨 풀어내자고 가여운 이들을 부른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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