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에서 향 사르는 존재들의 눈부심

제주 오름에서 향 사르는 존재들의 눈부심
김순이 시선집 '제주야행'…"미래의 머나먼 저기 응시"
  • 입력 : 2019. 07.08(월) 17:57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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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을 걷다가/ 한 송이 들꽃을 만나면/ 허리 구부려 눈길로 입맞춤하는/ 그대는 시인// 바람 부는 날/ 한 잔 술에 손 잡혀/ 어쩌지 못할 마음으로 떠돌다가/ 눈물도 없는 마른 통곡으로 가슴이 저리는/ 그대는 시인'('그대는 시인' 중에서)

오래전 쓴 이 시의 결을 따라가면 그는 이즈음 '시인'처럼 지내고 있다. 새 소리가 아침잠을 깨우고 어느 문을 열어도 초록세상이 안겨오는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 둥지를 튼 지 5년째. 시인은 '두말 없이 무릎 꿇을 수 있는 것들'과 어울려 사는 '오늘 하루가 시'라고 했다.

1988년 시단에 발을 디뎌 지금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묶어낸 제주 김순이 시인. 그가 그려온 시의 여정을 담아낸 시선집이 '제주야행(濟州夜行)'이란 이름으로 출간됐다.

시선집은 김 시인이 1991년 내놓은 첫시집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를 시작으로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을 향하여'(1992), '미친 사랑의 노래'(1993), '초원의 의자'(1996), '오름에 피는 꽃'(2001) 등 시집 표제를 붙여 5부로 짜였다. '언제부턴가 나를 위해/ 한 다발의 꽃을 사는 일이/ 머뭇거려'지는 '마흔살'을 지나 '외로운 이름일수록/ 한 번 더 안아주고' 싶은 '두서없이 쓴 시'까지 다다른다.

그 길의 끝에는 오름이 있다. 시적 화자가 오름에서 향을 사르듯 열심히 살고 있는 나무와 풀, 새와 벌레 등이 보여주는 고요하고 적막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모습('오름은 살아있다')은 시인의 작품 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허상문 평론가는 "시인의 시세계가 근본적으로 낭만주의적 서정시의 문법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며 "시인이 당면하고 있는 세상과 자연이라는 현실적 삶의 공간이 단순히 '지금 여기'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이상화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머나먼 저기'를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과 다르지 않다"고 해설했다. 황금알.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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