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이야기] (4)바깥은 여름

[작은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이야기] (4)바깥은 여름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 속에서 살고 계신가요?
  • 입력 : 2019. 06.13(목) 22: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정영자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왼쪽)이 정혜선 동광해바른도서관 회원과 만나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내면을 응시하며, 보지 않았던 것을 보게 하고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게 하는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김애란 저/ 문학동네



무척이나 슬프게 다가온 제목
자기만의 구 갇혀 겨울 버틸까
세월호 연상 장면서 눈물 왈칵
관계 다룬 '가리는 손'도 특별



▶대담자: 정혜선(동광해바른도서관 회원)

대담 진행: 정영자(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정영자(이하: 정) 바깥은 여름이란 제목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어떻게 보셨나요?

정혜선(이하: 혜선)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이 무척이나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바깥은 여름이지만 안은 여전히 겨울일까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구(球)안에 갇혀 겨울을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을 가져 온 단편 '풍경의 쓸모'의 인물들처럼 우리들은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희한하게도 소설 안에서의 인물들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각 단편들의 주인공은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시대'라는 한 배에 타 어딘가로 떠나고자 모여 있는 승객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여덟 번째 단편이 있다면 그 배를 타고 다 함께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이 그려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정: 책을 읽은 전체적인 느낌은 어떠셨나요?

혜선: 이 소설집이 발간된 것도 벌써 2년 전이고, 그 중 어떤 작품은 7년 전 발표작이기도 해서 좀 오래된 책이구나 하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읽어내려 갈수록 내가 너무 많이 잊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필연적으로 세월호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불과 5년 전의 일임에도 평소엔 거의 잊고 지내다 보니 옛날 일처럼 아득하기도 한데요, 책을 읽는 내내 당시의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재생되면서 마치 지금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슬프고, 아팠습니다. 어떤 장면에선 울컥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내가 통과했던 이삼십 대의 시간보다 더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 젊은 세대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작가에게도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내가 애써 잊고 지내던, 혹은 의식하지 못한 채 외면하는 우리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직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 일곱 편의 단편 중에서 특별하게 다가 온 작품과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혜선: 일곱 편의 단편 중, '가리는 손'은 저에게 좀 더 특별했습니다. 이 짧은 소설 안에 참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해자로서의 아이, 피해자로서의 아이, 노인 혐오, 싱글맘과 다문화 가정 등의 소재도 그러했지만 사람 간의 관계와 인간의 본성까지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더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하고요. 보통 성인이 되는 스무 살까지를 육아의 과정으로 본다면 저는 딱 그 중간, 뜨거운 여름처럼 가열차게 성장하고 있는 열 살 아이의 엄마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선 재이와 노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아이들을 좀 더 들여다 보게 되더군요.



▶정: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는 편견이나 노인 혐오 등, 덤덤한 문장 속에 비수처럼 날카롭게 던지는 화두들에 대해 어떻게 보셨나요?

혜선: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늘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늘 너그러운 척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들이 오면 한 발 빼기 십상입니다. 소설 도입부에 보면 죽은 것을 죽이는 것에 대한 심드렁한 희열과 혐오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어쩌면 이 문장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소설 상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이들이 노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 모두가 사실은 사회적 약자의 표본들입니다. 서로 해(害)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똑같은 약자인 셈 입니다. 서로 연대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를 혐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디어나 SNS 등이 '사회적 강자'에 대해 지나친 찬사와 부러움 등을 노골적으로 부추겨 그 반대에 있는 약자를 혐오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그런 것에 더욱 민감하지요.



▶정: 재이의 엄마가 아들의 생일상을 차리면서 육아의 힘듦에 대해 회상을 하는데,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혜선: 매 순간이 진정으로 힘듭니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나이였을 때는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때는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 퇴근이 늦었고 아이는 저를 기다리느라 밥도 먹지 않고 있었죠. 그 시간이 지나, 지금은 시간적 여유도 많고 아이도 잔손이 가지 않아 편할 법도한데 감정적으로는 더 힘들어 진 듯합니다. 우선, 아이가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숲과 걷기를 좋아하는 인성 좋은 아이가 되길 바라는데 아이는 집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고, 여행을 귀찮아하고, 여행도 깨끗한 호텔이 아니면 가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성향의 차이라고 인정하고 자기 모습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정: SNS의 폐단에 대해서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녀에게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 생각해 보셨나요?

혜선: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스마트폰도 없고 SNS도 잘 모르지만, 가능한 늦게 쥐어주려고 합니다. '가리는 손'에서 보면 '바깥'이라는 단어가 또 나옵니다. 현관문만 닫으면 바깥세상과 단절되었던 지난날과 달리 지금은 그'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이야기이죠.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대목입니다. 관계는 인간으로서 평생 가꾸고 보살펴야 하는 소중한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관계 맺기는 여전히 어렵고 서툰 일이지요. 그러기에 나에게 다가온 인연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아껴가야 하는데, 온라인상의 소통은 관계를 맺는 것도 끊는 것도 모두 즉흥적일 수 있고, 너무나 쉽습니다.



▶정: 재이의 엄마처럼, 세상의 모든 엄마는 내 아이만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혜선: 우리는 놀라서 비명을 지를 때도 손을 가리고 또 웃을 때도 손을 가립니다. 당연히 비명을 지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웃음을 가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대목을 보면서 섬찟 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보고 엄마는 '죽은 동물을 덜 먹어 본, 촉촉하고 맑은 혀'로 아이들을 묘사했지만 실은 그게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마지막 부분이 바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비범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이를 착하고 순수한, 사회적 약자 정도로 그릴 수도 있었는데 이 장면을 통해 어떤 인물이, 그것이 바로 아이일지라도, 양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가진 여러 면을, 들춰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이의 엄마가 그것을 발견해 낸 것은 다행이었고 더 나아가 희망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 대담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독서계획은?

혜선: 제주에 오기 전까진 책을 혼자 읽고 가끔 지인에게 추천하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책모임을 통해 좀 더 깊이 있게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혼자 읽었을 때 보다 여럿이 읽고 토론할 때 생각이 더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잘 읽어지지 않는 고전과 과학 관련 책도 같이 읽고 싶습니다.



▶정: 작은도서관 애용자로서 느낀 점과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혜선: 작은 도서관은 제가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처음 저를 따뜻하게 맞아준 공간입니다. 큰 도서관과는 달리 작은 도서관에서는 내가 이용자이자 관리자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마을 안의 작은 도서관을 주위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기꺼이 책 친구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동광해바른작은도서관


지역주민들과의 활발한 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지는 명소다. 문화교육의 허브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연중프로그램을 찾는 이용객들 스스로 재능기부를 하며 그 만족도가 높다. 주민자치프로그램, 컴퓨터와 다양한 독서문화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도외탐방과 여름캠프는 도서관 활동의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로 12번지. 이용 문의 064-794-2287, 010-3800-193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73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