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소설기계’가 써낸 디테일한 아홉이야기

[책세상] ‘소설기계’가 써낸 디테일한 아홉이야기
김경욱의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 입력 : 2019. 06.07(금) 00:00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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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뭉스럽고 풍자적 문장 기술
5년 만에 9개 단편 모아 발간


'진화하는 소설기계' 김경욱이 여덟번째 소설집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을 출간했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이후 5년 만이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을 야구와 빗댔다. 우연하게도 9명이 선수가 뛰는 야구처럼 단편작품은 9편이며, 작가가 펴낸 여덟번째 소설집이니 8번 타자의 위치로 가늠된다. "8번에게 풀 스윙은 언감생심"이라고 몸을 낮춘다. 그러나 그의 여덟번째 타자가 풀어내는 다양한 색채의 단편들은 야구에서의 사이클링 히트의 짜릿한 쾌감을 선물한다.

표제작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은 김경욱표 소설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속물 근성과 허위로 가득찬 우리 시대의 씁쓸한 풍경에 덧대어 의뭉스럽고 풍자적인 문장으로 그려낸다. 소설 속 주인공은 면접시험관을 마주하는 순간, 옛 여자친구의 아버지들을 떠올린다. 또 여자친구의 집에서 단둘이 있을 때, 여자친구의 아버지와 대면하는 장면들이 그려진다. 자신과 상대와의 대결구도에서 남자 주인공은 어쩔줄 몰라하는 취업준비생에 불과하고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하다.

그 의뭉스러움은 '양들의 역사'에 이르러 더 뚜렷하다. 일본인으로 자주 오해 받는 주인공 나와 가공의 삶을 진짜처럼 만드는 택시기사의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통해 삶의 진실과 비밀이 결국 하나의 줄기에 들어 있음을 서늘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고양이를 위한 만찬'은 대화로만 진행되는 독특한 스토리 구조다. 그 배경은 자식을 사고로 잃고 이민을 선택한 부부의 대화이기 때문에 대화의 내용에는 누구도 함부로 입을 떼거나 끼어들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을 빼놓지 않는다.

'밤낚시'는 중년이 된 고교 동창생 3명이 자신의 기억들을 붙들고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삶의 지난함을 생생하고 손맛 좋은 문장들로 능청스럽게 풀어낸다.

이밖에 '경마학 개론' '매우 그렇습니다' '수학과 불' '필경사 조풍년' '천국의 문' 등이 책 안에 담겼다. '천국의 문'은 제4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단편소설집은 정교하고 치밀한 김경욱 소설의 색채를 잃지 않으면서도 유연한 장난기까지 더해진, 좀더 진일보한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문학동네, 1만3000원. 백금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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