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15)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15)
  • 입력 : 2019. 06.06(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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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6-2. 대륙에서의 며칠



그들은 급할 게 없다. 주어진 일을 근무 시간 안에만 처리하면 그만이다. 하나의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거리가 주어지고, 교대 근무자가 할 일도 남겨 둬야 하므로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자동차로 운반하면 10분이면 될 일도 그들은 쉬엄쉬엄 수레를 끌어 운반한다. 인구가 많다 보니 일자리가 부족한데 기계화를 하면 더욱 취직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만디라는 말이 나왔다. 중국인들이 너무 부지런하면 13억 인구의 절반이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삽화=고재만 화백

가이드는 일행을 베이징역에 데려다주고 금산에게 행선지까지의 교통편을 적은 메모를 주며 설명했다.

지도상에서 보면 가까운 거리이지만 중국은 넓었다. 하룻밤과 한나절을 기차에서 지새우고, 버스를 두 번 갈아 타서야 랴오닝성에 있는 어느 지방 도시에 도착했다.



중국 사회는 이중구조를 가진 사회라고 말한다
중국인의 의식구조에는 혈족이나 친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꽌시(關係)라는
특수공간과 와이런(外人)이라 불리우는 공간이 따로 있다





차창을 통해서 본 거리의 풍경은 질서 없이 혼잡스러웠다.

버스가 클랙슨을 울리는데도 쳐다보지도 않고 유유히 버스 앞을 가로질러 길을 건넜다. 이것도 그들의 오랜 생활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넘었으나 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중국인에게 규칙이라는 것은 '어차피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바꿀 수도 있고,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래서 공산당 정부가 만든 '규칙'이 있다면, 인민들에겐 '대책'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겼다.

엄청난 인구를 가진 정부가 모든 분야에서 세세하게 규칙을 정해도 그 많은 사람을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그들이 지녀온 전통적인 사회규범이나 윤리 도덕의식을 개혁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흔히 중국 사회는 이중구조를 가진 사회라고 말한다.

꽌시(關係)와 와이런(外人)은 이런 이중구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중국인의 의식구조에는 혈족이나 친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꽌시라는 특수공간과 그 이외의 사람을 일컫는 와이런이라는 공간이 따로 있다. 특수공간에서는 예의범절과 상부상조, 이해와 배려가 넘쳐난다. 제주의 괸당 문화와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면 배타적인 공간이 된다. 와이런의 공간에서는 예의, 규범, 상식, 정직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일반 대중 사회에서는 거친 언행이나 배신, 무책임, 불법, 약육강식과 같은 일들이 다반사로 나타난다.

이런 의식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중국에서의 자동차 영업이다. 이들은 대출을 받아 자동차를 구입해 놓았지만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신뢰 규범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출금을 갚지 않아 회수불능의 불량채권이 되는 일이 많아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개발도상 국가에서는 정부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흔한 문제지만, 중국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세계 주요 12개국 중 최고다.

그들의 부정부패는 규모가 크며 대범하다. 중국인민해방군 특수안건 조사팀이 사천성, 운남성, 산서성 등 5개 성을 2년에 걸쳐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군수창고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탱크 1,800량, 미그전투기 360기가 깜쪽 같이 사라졌다. 그것들을 후송처리( 폐기처분) 한다고 장부에 기록해 놓았는데, 실상은 분해해서 알루미늄 합금과 엔진 등은 기업이나 아시아 각 나라에 팔아먹고, 무기는 암거래를 통해 마피아에게 매매한 흔적이 드러났다.

오죽했으면 부패의 부(腐)자를 바꿔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왔겠는가.

부(腐)를 분해하면 관청의 부(府)아래 고기 육(肉)이다. 과거에는 정부 관료에게 비싼 고기를 뇌물로 주었다고 해서 생긴 글자다. 그런데 요즘에는 돈과 여자로 뇌물을 주니, 고기 육(肉)자 대신 관청 부(府)아래 계집 녀(女)와 쇠 금(金)자를 쓴 글자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한 조사에 의하면 중국 관료들의 95%가 애인이 있다고 한다. 이 애인들을 관리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부정부패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을 고칠 수 없는 이유는 중국은 공산당 일당 지배 국가이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모든 조직을 감찰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공산당을 감찰할 권한을 가진 조직이 중국에는 없다. 내부에 감찰기구가 있지만 이런 시스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런 부정부패를 보다 못한 시민들이 들고일어선 것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다. 이때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 100만 명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탐관오리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중국 정부는 인민해방군 탱크를 앞세워 유혈진압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천 명의 희생자가 생겼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토지제도는 우리와는 판이하다.

장석규 씨는 이를 잘 모르고 덥석 땅을 임차했기 때문에 분쟁이 생겼다.

중국의 헌법과 토지관리법에 의하면 대부분의 도시지역 토지는 국가 소유고, 농촌 지역 토지는 집체 소유다. 집체 소유는 농촌의 행정기관에서 해당 지역을 위한 공공시설이나, 공익사업용 그리고 농지나 농가 등의 용도로 사용하도록 분배된 토지다. 그래서 한국처럼 토지의 매매나 증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에서는 거래나 담보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토지는 국가가 소유한 도시지역의 토지사용권일 뿐, 농촌 지역의 집체 소유 토지사용권은 원칙적으로 분배나 취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외국인이 독자적으로 토지사용권을 취득하고자 할 경우는 외국인 독자 기업이 자체 명의로 관계 당국으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권리를 취득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행정기관이 소유한 토지사용권을 투자유치 차원에서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주기도 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도시개발이나 도로건설 등을 위해 기존에 임차된 토지사용권을 회수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토지 수용을 할 때는 기득권을 가진 수용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 사실을 전해 들은 장석규 씨는 미리 준비한 뇌물을 꽌시(關係)에게 건네고
재판에서 승소했다. 종필 부자를 뒤로하고 왕 씨 부자와 용찬은
금산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강하로 향했다



그런데 장석규 씨는 그 지역 공산당 간부와 지방 관료들이 짜고 외자의 투자 사업을 빌미로 농촌의 가옥과 전답에서 농민을 내몰고 땅을 임차했다. 그리고 토지 수용의 대가로 장석규 등이 지불한 보상금을 관료들이 착취한 데서 법정으로 비화 되었다. 관료들은 지방정부가 해당 토지를 공공의 이익 목적으로 다른 곳과 재계약할 때는 해당 농가와 상의하지 않고 향촌조직인 생산대(生産隊)와 독단적으로 체결할 수 있다는 조항을 악용한 것이다. 그래서 땅을 빼앗긴 농민은 외국 사람들이 돈을 벌어 가는 것이 과연 공공의 이익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 판단해 달라고 고소한 것이다.

중국은 1995년에야 사법시험 제도가 정식으로 시행되어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법률적 소양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버젓이 판관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그 지역 유지들이 재판을 좌지우지했다.

그런 사실을 전해 들은 장석규 씨는 준비해 온 뇌물을 종필이 작업해 둔 지역 관료 꽌시(關係)에게 건네고 재판에서 승소했다.



종필은 부친이 임차한 땅을 관리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참여한 외국인 개발조합에 나가 진행 상황을 전달받고, 외국에서 들여오는 시추 기계의 임대 및 사용대금, 인건비, 운영비 등 공동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부친께 청구하는 일이 주 임무였다.

종필은 6개월이 넘는 중국 생활을 하면서 중국어도 많이 배웠다고 자랑했다. 금산은 실력을 보자며, 중국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제법이라는 듯 웃었다.

"계획된 시추 공구에 기계도 설치했는데, 농민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시작도 못 했어. 하지만 재판이 끝났으니 이제 곧 착공하게 될 거야."

종필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금산과 용찬을 바라보았다.

"땅에서 가스가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우리의 일이 있어서."

금산은 아쉬운 표정으로 종필의 손을 굳게 쥐었다.

"형, 가스 나오면 우리 잊지 마."

"그래, 중국까지 와서 이렇게 응원해 준 고마움 잊을 수 없지."



종필 부자를 뒤로하고 왕 씨 부자와 용찬은 금산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강하(康河)로 향했다. 랴오닝성은 넓은 만큼 교통도 불편했다. 이동하려면 역과 터미널이 있는 큰 도시로 가야 했다. 버스는 있는데 시간표라는 게 소용이 없었다. 운전기사 마음이다. 승객이 많지 않으면 한 시간이 지나도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일행은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이틀이나 걸려서 해안에 있는 강하에 도착했다.



개발의 새벽을 맞아 눈 뜨기 시작한 도시는 도로를 넓히거나 포장하는 공사로,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공사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주민들을 선동하는 붉은 글씨 격문들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금산은 사람들을 붙들고 메모해온 주소지를 찾았으나 이미 도로에 편입되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을 고생하며 바다 건너 먼 길 찾아왔는데 난감한 일이었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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