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마부니언덕에서 오후라만으로

[김준기의 문화광장] 마부니언덕에서 오후라만으로
  • 입력 : 2019. 06.04(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오키나와에서는 해마다 종전 기념일을 전후하여 '2019 마부니피스프로젝트(MPP)'가 열린다. 20만명의 희생자를 낸 오키나와전쟁 최후의 격전지 마무니언덕이 주전시장이다. 40명에 달하는 제주와 한반도, 타이완 그리고 오키나와와 일본열도의 예술가들이 참가하는 '2019 MPP'(6월 10~28일)의 주제는 '평화의 공명(共鳴)'이다. 이 행사는 평화공원 전시장과 야외공간, 캠프타르가니, 히메유리홀 등에서 걸쳐 어두운 역사를 예술적 소통으로 승화하고,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는 전쟁기지의 현실을 성찰하는 평화예술 프로젝트이다.

필자의 관심은 MPP에 그치지 않는다. 이어지는 현장예술 '오후라피스아트프로젝트(OPAP)'가 있기 때문이다. '오후라'는 오키나와 동북부에 있는 만(灣)의 이름이다. 이곳에 있는 헤노코 곶에 대규모 해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주민들이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70% 이상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고, 오키나와현지사도 안티 아베의 입장에 서 있으며, 오키나와현 주민투표에서도 건설 반대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집행을 서두르고 있고,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시위를 벌이며 건설현장 앞에 진을 치고 있다.

필자의 발걸음은 마부니언덕에서 오후라만으로 이어졌다. 눈부신 산호빛의 오키나와 바다는 누부시게 아름다웠다. 해변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투쟁현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투쟁에 나선 주민들의 면면은 한국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주민들과 활동가, 정치인, 토목전문가, 음악인, 연극인 등이 참가해서 발언과 공연을 이어가는 대피크닉이 열렸다. 해상의 보트시위와 해변의 음식축제가 함께 열렸다. 투쟁과 낭만이 공존하는 시공간이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대조를 분노 표출 아래 비극적 서정이 보여서 더욱 역설적인 슬픔의 아름다움이 드리워졌다.

헤노코기지 문제는 일본 외딴 섬의 남의 일이 아니라 한반도의 현실과 맞닿은 우리의 일이다. 일본국 오키나와현 헤노코만의 일은 대한민국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와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의 일들과 구조적으로나 현상적으로 동일하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하여 태평양 서북쪽 동아시아에 기지를 길게 걸쳐 놓고 있는 한 이와 같은 폭력과 갈등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와 제주도, 오키나와와 타이완, 필리핀에 이르는 '불의 고리'는 마치 오후라만 해변에 떠있는 부표의 사슬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는 이미 보았다. 대추리와 강정마을에서 마을과 생태서식지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내쫓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현장을. 그러나 우리에게는 남아있다. 그곳의 삶과 풍경에 대한 기억이. 그 기억은 언젠가 지금의 현실을 되돌릴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동반한다. 마을은 사라져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활동이다. 그 가운데서도 예술활동은 감성적 공감을 바탕으로 오래도록 남아 인류사적인 문화유산을 이룬다. 대추리와 강정의 현장예술이 그랬듯이 마부니언덕에서 오후라만으로 이어지는 현장예술도 아픈 현실을 성찰하고 그것을 미래로 투척하는 기억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46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