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재의 목요담론] 빠름과 느림

[이수재의 목요담론] 빠름과 느림
  • 입력 : 2019. 05.30(목)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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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몸무게가 60㎏ 정도 되는 생물 중 60억 개체가 넘는 것은 인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증가 추세가 정체된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조만간 100억 명이 지구에 살게 된다. 지구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상당 부분 지구의 암석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지구의 기억(The Memory of Earth)이다. 지구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많이 있으며, 오늘날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있다.

지구의 생명체의 진화 상황을 보면 이들 중 상당한 것이 살아남기 위하여 '빠름'을 선택함에 있어서 이 빠름이 삶 혹은 생존의 본성인가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일본 북해도의 미카사 지질공원 박물관 건물에는 거대한 수룡이 커다란 암모나이트를 입에 물고 있는 조형물이 있다. 그동안 암모나이트 화석에서 발견되는 많은 구멍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이 있었지만 현재는 수룡에게 잡혀먹힐 때 날카로운 이빨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박물관 안에 들어가면 지름이 2m인 거대한 암모나이트 모형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박물관 안에 있는 암모나이트의 진화도를 보면, 초기에는 아주 작았던 것이 생존을 위해 몸집을 점점 키운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몸집이 커지면 포식자로부터 공격을 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몸집이 커짐으로 인해서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려졌을 것이고, 이는 초대형 포식동물인 수룡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그 이후 몸집이 조금씩 작아졌지만 멸종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무작정 몸집을 키운 결과가 멸종이었을까?

오징어를 먹을 때마다 이 동물은 몸을 보호하는 패각이 없으므로 참 약해서 험한 생존 경쟁에서 얼마나 버틸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암모나이트나 오징어는 다 두족류로서 공통점이 있는데, 오징어는 왜 패각을 다시 버렸을까? 오늘날 가끔 발견되는 대왕 오징어는 그 크기로 생존을 도모하지만, 작은 오징어는 '빠름'을 얻기 위해 다시 패각을 던져버렸을까?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도 대부분 속도를 기반으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빠름'은 생존 혹은 진화의 한 단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빨라지면 나도 빨라지거나 몸집을 키워야 하는 이 공진화적 무한 경쟁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빠름'을 위해 자기 자신의 무게까지 벗어던져 버린 '빛'도 있지만, 지속적인 에너지원이 없는 빛 조차도 암흑 공간 속으로 곧 사라지는 것을 보면 문득 그 마저도 왜 그런 빠름을 얻기 위해 몸부림 쳤는지 궁금하다.

오늘날 우리 삶은 모든 것이 '빠름'에 맞추어져 있고, 이를 기준으로 우리 삶을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는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자연적인 현상일까? 현재 우리 삶은 무한 경쟁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대부분이 녹초 상태(burn out)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녹초 상태를 극복하는 데는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곳에서 느림을 선택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제주도에서 느림의 혜택을 시험해 볼 작정이다.

<이수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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