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계 이 사람] (26)연극인 부부 강상훈·정민자씨

[제주문화계 이 사람] (26)연극인 부부 강상훈·정민자씨
"첫 부부 역할…'언제나 내 편'이라 고마워요"
  • 입력 : 2019. 05.21(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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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레아트센터 '늙은 부부 이야기' 무대에서 만난 정민자·강상훈 부부. 연극 인생 4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제주 중견 연극인들이다. 진선희기자

연극 인생 40주년 눈앞에
'늙은 부부 이야기' 호평

6월 16일까지 연장 공연
소극장 지키기 위해 분투
"개인의 힘으론 한계" 호소

소극장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이 끊이질 않던 연극은 끝내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배우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지난 19일 저녁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세이레아트센터. 제주 연극인 강상훈·정민자 부부가 펼치는 2인극 '늙은 부부 이야기'가 90분 넘게 소극장을 채웠다.

1961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이 무대에서 부부로 만난 건 공동연출까지 맡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몇해 전 '콜라소녀'에서 어머니와 아들 역으로 나온 걸 빼면 연출가와 연기자로 매번 엇갈렸다.

"부부여서 연습 시간을 사전에 맞추지 않아도 되니 좋아요. 한밤중에도 연습할 수 있으니까. 연기할 때는 상대 눈빛만 봐도 대사가 날라갔는지, 헤매는 중인지 바로 알 수 있죠."(정민자)

'늙은 부부 이야기'는 2015년 두 사람의 '연극 인생 35주년'을 기념해 제작했다. 이미 2003년 서울 대학로에서 초연되며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연극이지만 실제 부부 연극인이 빚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결이 달랐다. 그해 7월 세이레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대전, 부산, 수원, 충주, 전북 부안, 울산 등 전국을 순회하며 70회 넘게 공연했다.

2019년 '늙은 부부 이야기'는 원작을 바탕으로 대사를 제주방언으로 고쳤다. 황혼녘에 찾아든 사랑이 한층 애틋하고 실감났던 건 두 사람의 연기 덕이 크지만 제주방언 대사도 한몫 했다. 둘은 바람둥이 신사 박동만과 욕쟁이 할망 이점순이 되어 관객들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했다.

이 작품은 재관람 관객에 대학생 등 젊은 층까지 호평이 이어지며 당초 6월 2일 막을 내리기로 했던 공연을 6월 16일까지 늘렸다. 1주일에 목·금·토·일 4회 공연하는데 연장 기간에 두 사람의 '늙은 부부 이야기'가 100회를 맞을 예정이다. 제주어판 '늙은 부부 이야기'인 만큼 제주출신 교포들이 사는 일본 등 해외 공연도 구상 중이다.

젊게 사는 비결로 연극을 꼽는 이들 부부가 이즈음 소극장 안에서 봄날을 누리는 듯 하지만 근래 보조금 사건으로 혹독한 시련기를 건너고 있다. 극단 이어도 대표 시절까지 합쳐 90년부터 제주시내를 전전하며 소극장을 끌어오며 수 차례 고비를 넘긴 부부지만 이번 일은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 강씨는 한동안 집밖으로 나오는 일이 무서웠다고 했다.

"극장 운영은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지자체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합니다."(강상훈)

남편은 지금 소극장을 지키기 위해 영주 사과, 국산 고추가루를 배달 판매하고 있다. 지원금 없인 옴짝달짝 못하는 게 제주 연극계의 현실인지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그래도 남편이, 아내가 곁에 있어 든든하다. "부부요? 애증이 교차하지만 '언제나 내 편'이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벗'이 아닐까요?"(정민자)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두 사람은 오늘도 부부의 이름으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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