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인생의 짐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인생의 짐
  • 입력 : 2019. 05.08(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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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이 인생의 짐은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지고 있는 짐은 필요한 것도 있지만, 버려야 할 것도 많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같은 수많은 짐이 우리의 어깨 위에 걸쳐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쓸데없는 무거운 짐을 많이 안고 살아간다면, 그만큼 고통스럽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불교에서는 인생이란 업보(業報)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짐 없는 인생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업보의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가다가 그것을 저세상으로 가지고 간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벗지 못하면 저세상에서도 다시 그 짐을 져야만 하는 윤회의 사슬에 매이게 된다고도 한다.

인생이 이토록 힘들고 무거운 것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 챙기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의 짐을 줄이려면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고 소중한 것들만을 늘려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거대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가뿐하게 바다를 누비는 고래처럼 살아가는 '부력'이 필요하겠지만 인간은 그럴 수가 없다.

우리의 가슴 속에 담겨 있는 모든 찌꺼기를 밖으로 끄집어내어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어깨에 짊어진 짐 때문에 걷기가 힘들 정도가 되어도 우리는 그 짐을 내려놓을 생각 없이 더 채워 넣고자 한다. 가벼움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가벼운 마음이 없다는 것은 마음속에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뒤집어씌우고 있는 거적 떼기와 같은 지저분하고 헛된 마음을 벗어던져야 삶의 무게가 가벼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쓸모없는 것들을 덜어내고 비워내지 않으면 머나먼 인생길을 제대로 갈 수 없다. 훌륭한 인생이란 덧셈과 뺄셈을 제대로 잘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덜어내고 비워낸다고 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의 맛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 인간의 멋있는 삶의 깊이와 무게는 '채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채우고자 할 때 잃는 것이 더 많고, 비우고자 할 때 얻는 것은 더 많은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짐을 줄이고 비우며 털어낸다 해도 꼭 가지고 가야만 하는 것이 있다. 인생의 배낭에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은 바로 사람과의 소중한 인연이 아닌가 한다. 이마저 버리고 우리가 어찌 살 수 있을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인생이란 그들과 크고 작은 은혜의 관계로 인해 엮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타인으로부터 빚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부모로부터 스승으로부터 지인들로부터 수많은 빚을 지고, 그들이 우리에게 지워준 소중한 짐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찬란한 5월이다. 그동안 나의 삶을 더욱 행복하고 빛나도록 짐 지워준 많은 분들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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