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서점에도 노키즈존이 있나요?

[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서점에도 노키즈존이 있나요?
  • 입력 : 2019. 05.08(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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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전화나 메시지로 "거기 노키즈존인가요?"라고 문의하시는 분들이 있다. 디어 마이 블루가 노키즈존이라면 아마 세계 최초로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서점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이 질문을 하는 부모들이 제주라는 곳에 대해서, 어떤 관광지의 공간이라는 곳에 대해서 갖고 있는 부당한 선입견이 서점으로까지 향한다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없이 씁쓸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사실 서점을 열면서 200종이라는 한정된 수의 책만 들이겠다는 나의 원칙과 이곳이 책을 사서 읽는 공간으로 기능하게 하려는 목적이 겹쳐져 아이들 책을 많이 두지는 않았다. 비율로 따지자면 약 10% 정도? 것도 책의 종수를 한정하다 보니 아주 다양하게 구비할 수도 없어서 각 연령대별로 기껏해야 한두 권씩 들여놓았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놓고 노키즈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웰컴키즈존도 아니었던 셈인데, 내 생각에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에 여행을 온다면 이 자연 속에서 애들이 뛰어놀며 즐기는 것만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굳이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다가 가는 사람들이 뭐 얼마나 있겠나 싶었다. 도민들이야 정말 어린이 책 전문가가 운영하는 좋은 어린이책 전문서점도 있고, 지역별로 도서관들도 꽤 잘 되어 있는 편이니 우리 서점이 어린이책을 많이 들여놓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문제될 일은 없어 보였다.

이런 생각이 판단 미스였다는 걸 알게 된 건 서점 오픈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였다. 오픈 날을 제외하고는 서점의 첫 어린이 손님이었던 10살 명준이와 9살 연진이는 남매가 아니라 같은 동네에 사는 친한 엄마 둘이서 각각의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을 맞아 제주에 한달살이를 온 거였는데, 2주차 정도가 되니 애들이 맨날 밖에서 노는 것도 지겨워해서 서점을 찾아 나선 길이라고 했다. 엄마들은 애들에게 읽힐 만한 책이 별로 없는 와중에도 어찌 저찌 책을 골라갔고, 여기서 산 책은 언제든 다시 와서 읽어도 되고 야외 공간에서 읽고 싶으면 방석과 피크닉매트를 빌려주고 텐트도 쳐준다는 말에 바로 다음 주에 도시락을 싸들고 정말로 다시 책을 읽으러 왔다.

그들은 건물 사이의 작은 잔디밭에 텐트를 쳐주고 피크닉매트를 빌려주자 서너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아이들이 텐트를 들락거리며 책을 보다 잔디를 뛰놀다 낮잠도 자다 할 시간에 엄마들은 자신들이 고른 책을 다 읽고 새 책을 골라 갔고, 그 이후로 일주일에 두 번씩 요일을 정해 간단한 도시락을 싸들고 피크닉을 왔다. 당연히 우리 서점에서 산 책을 가지고 말이다. 이건 정말이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서점에서도 아이들 책을 늘릴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 사실 애들 책은 잘 모르는 분야라 공부가 필요하기도 하고 서점 특성상 비율을 많이 늘리지는 못해서 일정 비율 안에서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인디언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디어 마이 블루는 아이들이 편하게 와서 책을 고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꼭 필요한 마을 서점으로 일조할 테니, 언제든 애들 데리고 부담 없이 오시면 좋겠다.

<권희진 디어마이블루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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