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의 문화광장] 4월의 마지막 밤

[이한영의 문화광장] 4월의 마지막 밤
  • 입력 : 2019. 04.30(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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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주었다.' 4월이 되면 토머스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의 첫 구절을 인용해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현대시에 기여한 뛰어난 선구자란 평가를 받으며 194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머스 엘리엇은 극시(Dramatic Poetry)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뮤지컬 '캣츠'는 다들 아는데 정작 '캣츠'가 그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 나오는 14편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1922년 발표된 그의 시 '황무지'는 수 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간의 탐욕과 무지 그리고 잔인함에서 비롯된 제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과 전후 허탈과 상실 그리고 무력감에서 비롯된 생명이 깃들지 못하는 황무지 같은 문명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세계사속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1861년 4월 미국 남북 전쟁발발을 시작으로 1865년 4월 미국 증기선 설타나호 침몰 1800여명 사망,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 침몰 1500여명 사망, 1915년 4월 아르메니아 대학살 150만명 사망 등 많은 피로 얼룩진 아픔의 역사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4월은 가장 잔인했다. 특히 제주의 4월은 1948년 4월 3일 다시 입에 올리기 힘들 만큼의 아픔의 역사가 있었으며 2014년 4월 16일 안타까움과 좌절감 그리고 무기력함과 분노가 뒤엉킨 비통한 슬픔의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이런 동병상련의 아픔을 연유로 4월에 유독 이 시가 자주 인용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를 조금 더 읽다보면 시인이 말한 잔인함은 황무지의 척박함과 황폐함조차 이겨내는 겨우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놀라운 생명력과 강인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죽음과 절망을 이겨내고 소생한 마른 라일락 구근의 부활을 말이다.

4월은 기독교의 큰 행사인 부활절이 있다.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부활에 반드시 생명의 죽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오만과 위선, 탐욕과 무능, 모든 비인간성의 죽음을 담보로 한 부활이 있어야 한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자주 불리는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4월의 마지막 날 되뇌어본다. 이 같은 4월의 비극이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4월의 역사가 '잊혀진 역사'가 아닌 4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래서 새로 거듭나는 '부활의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한영 제주해녀문화보존회장·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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