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선의 문화광장] 탁상을 박차고 나가, 봄!

[변명선의 문화광장] 탁상을 박차고 나가, 봄!
  • 입력 : 2019. 04.23(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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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위로가 되어주는 대부분의 예술가는 모두들 가난하다. 마치 일반인과 삼성 이건희 부자 인생과는 아무런 관계없듯 잘 나가는 화가의 그림 값과 나는 늘 별개의 인생이다. 하지만 창작을 놓지 않고 쉬지 않고 작업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분명 풍요롭게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늘 아이디어 그리고 시간과 비용과 재능을 기부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땀 흘리는 노동도 무가치하고 예술은 더욱 몰가치한 시대, 우리는 그런 제주에 살고 있다.

긴자의 건물은 품위를 갖추기 위해서 건물의 핵심적인 위치에 전시장을 마련한다. 그에 그치지 않고 젊은 예술가를 후원하면서 기획 지원한다. 그들이 성장을 위한 투자가 건물주의 또 다른 자본투자가 되는 구조다. 그것이 갖고 있는 생명력이 긴자라는 동경의 시가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환경은 자본가의 욕망에 기대는 기관의 행태를 목격하게 될 뿐이다.

교육기관은 공문서를 통해서 결정하고 근거에 의해 움직이는 기관이다. 투명하고 훌륭한 제도 맞다. 하지만 권력 없는 일반인을 대하는 교육기관의 자세는 어떠한가. 전시행사하기 전까지 메일 한 장 없이 한통의 전화가 전부였던 전시를 진행했다. 3·1절 기념 제주교육청 제주도서관에서 진행된 법정사동이 동화 그림전시, 필자의 그림을 전시하면서 드는 생각은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의구심이 든다.

행사 소식도 없이 현수막 그림은 작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걸었다. 그래놓고 행사 잘했다 자찬한다. 도서관은 저서 외에 영상물의 저작권 관련 사항을 깡그리 모른다 하더라도 일을 진행하기 전 작가에게 허락받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인 예조차 저버린 교육기관, 오로지 탁상행정, 염치없음도 관행이라고 하는 것인가. 한사람 건너면 다 아는 좁은 지역이니 그냥 넘어갔던가. 작은 변화가 안되는데 무슨 창의교육과 미래인재를 운운하는가.

우리는 변화를 희망하며 무릎 책을 읽히며 아이들을 키웠다. 형편 따라 그중 최고의 것을 선택했고 자녀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전해주려 애썼다. 평균이하의 규칙 규정, 판에 박은 학교생활을 잘 이겨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변했고, 아이들은 진화했다. 영상세대 우리의 아이들은 이미지로 기억을 한다. 감수성으로 공감하며 기억한다. 감동 없는 고답한 방식으로는 동요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극에만 동하는 듯 보이지만, 매력의 유무를 여러 각도로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인 세대로 변모했다. 시민들의 감성의 면모는 스팩트럼은 넓고 깊어졌다.

하지만 우리 기관의 수준은 한참 낮다. '공짜전시를 유치하면 능력'이라며 칭찬해 주는 제주교육사회 올드함을 넘어 이상하기까지 하다. 탁상행정으로 보기엔 그저 작품을 자져다 놓으면 전시라고 생각이 되는가. 그저 행사를 끝냈으니 대단히 뿌듯하였는가. 와서 전시해 주면 작가, 너네가 영광이라는 사고방식, 정말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그 탁상을 치울 생각은 진정 없어보이는 심란한 봄이다. <변명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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