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4월에 평화를 생각하다

[허경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4월에 평화를 생각하다
  • 입력 : 2019. 04.10(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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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평화의 섬이다. 평화를 거론할 때면 의례히 제주를 초두에 올린다. 그러나 평화가 국가와 사회는 물론 개인적 삶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도 우리는 평화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 평소 물이나 공기의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하듯이 전쟁이나 테러로 인한 불행한 상황을 접하지 않고는 대부분 평화로울 때 평화의 소중함이란 관심 밖의 부분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평화의 섬 제주지정은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위상을 제고시키는 데 제주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중요한 입지적 대표성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제주의 무형자산인 '三無정신'은 제주가 선천적으로 평화지향성을 내포하고 있는 인문학적 요인이다. 세계 어느 곳에 도둑이 없으며 세계 어느 곳에 거지가 없으며 세계 어느 곳에 대문이 없던가. 도둑이 없다는 것은 상대의 재산을 탐하는 비도덕적 행동을 않는다는 자기결의이며 거지가 없다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도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상생의 발현이며 대문이 없다는 것, 그것은 타인을 믿고 자신을 열어 서로 소통하며 생활해 나가겠다는 선진의식의 표출일 것이다.

대부분 섬의 문화전통이 섬이 갖는 폐쇄성에 기인한 경우가 많은데 제주의 삼무정신은 긍정적 개방성에 기초하고 있다. 나 자신부터 오픈하여 타인을 포용하는 글로벌 마인드, 21세기 시대정신의 DNA가 탐라섬 밑둥에서 숨쉬고 있었다. 이는 평화수호의 근본정신으로서 타자와 내가 더불어 함께하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는 관계이자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 제주의 현실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진정 제주가 평화의 섬인가를 되묻게 한다. 골깊었던 70년의 역사적 갈등도 치유해 가는 시기에, 10년을 속앓이하고도 마무리가 힘든 강정마을, 점점 첨예하게 대립하는 성산 제2공항반대와 새로운 갈등의 시작점으로 부각된 영리병원의 재개, 예래휴양주거단지의 반환, 끊임없이 증폭되는 제주사회의 갈등은 메가톤급 태풍보다도 벅차고 힘겹다. 그러나 이를 해결해야할 당사자인 우리는 이미 내성이 생긴 듯 언제부턴가 우리의 문제가 아닌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 평화의 섬에 있으면서도 실은 평화롭지 않은 일상속에서 긴장하고 위축되어 산다. 평화생태계의 원초지 제주는 지금 어디로 부유하고 있는가. 거센 갈등의 파도속에 떠있는 이웃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명치끝이 아리다.

평화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의 섬이라 지정하였다고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도 지자체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힘써야할 평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 그리고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와 실천 노력만이 나를 지키고 평화를 보존할 수 있다. 전쟁만 없으면 평화가 보장된다는 단순논리에서,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개인적 이기주의에서 탈피하자. 먼 옛날 탐라국부터 시작된 제주섬의 삼무정신에 평화의 근간이 있음을 가슴속에 새겨보자. 이것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며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치며 민족의 평화를 수호했던 선열들의 유훈을 잊지 않는 최소한의 양심일 것이며 4·3 71주년을 맞는 자세일 것이다. <허경자 서귀포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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