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기준 실향민 2·3세대 포함 2만3000명막내가 70대… 고령 1세대 현황파악 거의 안돼"고향땅 못 밟는다면 물적교류라도 되길 소망"
지난해 10월 31일 제주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성사됐다. 평안북도 대동군 초담리에서 뛰어놀던 꼬맹이들이 6·25전쟁으로 헤어진 뒤 70년 만에 만난 것이다.
이 만남은 본보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실향민 조은호(86) 할아버지를 인터뷰한 기사를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고봉식(85) 할아버지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면서 이뤄졌다.
조 할아버지는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봉식이를 만나니 너무 반갑다"면서 "당시 봉식이랑 동네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기쁜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론 고향에 가고 싶다는 그리움이 더 간절해졌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 할아버지 역시 "1살 위인 은호형이랑은 바로 옆집에 살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다. 가까이 살다보니 딱지치기, 자치기 등 함께 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한 뒤 "형, 꼭 같이 고향에 갑시다"라면서 조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6·25때 헤어져 지난해 10월 70년만에 제주에서 만난 조은호(왼쪽)·고봉식 할아버지.
실향민 사이에는 시간과 거리, 국가를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1년 전 일어났던 일도 가물가물한 시대에 이들은 무려 70년 전 일들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하와이-제주라는 거리 마저 뛰어넘어 만났기 때문이다. 그 힘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하지만 제주에서 실향민에 대한 현황이나 조사, 실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겉으로는 실향민 본인이 조사를 꺼린다는 이유라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예산과 인력 등 지원의 한계가 자리잡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제주도내 실향민은 2만3000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이는 실향민 2, 3세대까지 포함된 수치다. 실질적으로 이북에서 살았던 1세대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박우철 이북5도위원회 제주도사무소장은 "제주에서 실향민 행사를 개최하면 70대가 막내고 100살을 바라본 회원도 있다"며 "시간이 지날 수록 1세대 실향민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자료를 하루라도 빨리 수합할 수 있는 실태조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하지만 실태조사는 예산과 인력의 한계로 아직 발걸음 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장으로 있는 동안 실태조사 실시를 가장 큰 목표로 삼아 진행할 계획이다. 도민과 행정의 관심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현재 실향민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례없는 연속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기대감을 갖고 있다. 다만 이제는 꼭 한 번 고향 땅 밟아보자는 '인적교류'가 아닌 북에 있는 친척에게 제주산 귤이나 돼지고기를 보내는 '물적교류'라도 성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은호 할아버지는 "이 나이에 고향에 간다고 터를 잡고 살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북에 있는 친척들에게 '은호 잘 살고 있다'는 표시로 선물 하나 보내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소원했다.
송은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