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왜 이렇게 정신병이 늘어나요?

[신윤경의 건강&생활] 왜 이렇게 정신병이 늘어나요?
  • 입력 : 2019. 04.03(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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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고 죽고 싶어요. 왜 그래요?" 진료실에서 거의 매일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 족집게 일타 강사처럼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고 싶지만 진료의사의 대답은 맹물처럼 밍밍하기 일쑤다.

본래 고통은 피하고 없애고 싶은 것인지라 즉각적 해결을 원하는 마음이 이해되나 요즘 사람들은 정말 아플 여유가 없다. 세상이 편리해지는 속도에 비례해 고통과 불편에 대한 인내심 역시 초고속으로 줄어드니 우리는 너나없이 조급하다.

많은 현대인이 소화가 안 되면 위장약을, 집중이 안 되면 ADHD 약을 복용한다. 이런 접근법이 전염병 퇴치, 생산성 향상, 노화 지연에 기여하며 인간에게 보다 편리한 생활과 오랜 수명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 멋진 신세계는 어느 새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더미와 불안·우울·분노에 찬 인간들로 넘쳐나는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우리는 달콤하지만 서서히 독이 퍼지는 마녀의 사과를 삼킨 것 같다.

현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한병철의 진단처럼 불안한 피로사회다. 그리고 이런 사회는 필연적으로 많은 정신병들을 유발한다. 그러니 우울, 불안, 분노 등의 정신병리를 개인의 문제로 접근해 10여분 만에 진단과 해법을 제시하도록 하는 현대의학과 의료보험제도는 참으로 무지막지하다.

현대인 자신을 전기화학적 신호체계로 작동하는 생물체로 환원시켰다. 그러므로 치료는 불균형의 지점에 작용하는 화학물질(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고혈압에 약을 복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여긴다면 우울증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과학기술에 의해 생명의 존재 양식이 달라지는 세상을 살아가므로 원시인처럼 모든 약물과 수술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인간과 생명현상을 전기화학적 신호체계로만 여기는 단편적 시각이 고혈압, 당뇨, 우울, 불안, 분노 등 많은 사회적 질병을 더욱 조장하는 위험성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약을 복용하지 말자는 것인가? 우리 사회 주류 질서의 대답은 '복용'에 방점이 찍힌다. 왜냐면 누군가의 병은 개인과 가족, 사회·경제·문화·역사·환경·유전 등 다양한 차원과 연관되어 있고 이를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고비용의 접근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F학점 답안이다. 본인, 가족, 의료보험체제 안에서 일 하는 의사, 국가 관료 모두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드는 훌륭하지만 힘든 치료를 선택하기 어렵다.

또한 약물 치료를 터부시할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의 약이 우울과 불안의 고통을 줄여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분명 이것은 충분한 치료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우울·불안·분노, 잉여인간, 여혐과 남혐, 범죄, 갑질, 고독사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약물 치료와 사형제도와 더 긴 교정원 수감만으로 세상이 나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우리는 팔다리가 마비되어 오는데도 여전히 탐스런 독 사과를 먹고 있다.

어쩌면 해독제는 불편하고 더디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를 바꾸기 시작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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