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화창한 봄날, 새들도 원한다

[김완병의 목요담론] 화창한 봄날, 새들도 원한다
  • 입력 : 2019. 03.28(목)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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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다음에 인류세를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류(Anthropo)와 지질시대 한 단위인 세(cene)의 합친 합성어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파울 크루첸(Paul Crutzen)이 처음 제안한 용어이다. 아직 인류세가 과학계에서 공식으로 인정되지 못했지만, 과학계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구의 지질시대는 보통 새로운 지층이나 화석층이 발견되거나 다섯 번의 대멸종이 도래하는 시점에 따라 결정된다. 고생대의 삼엽충, 중생대의 암모나이트와 공룡 등의 대멸종이 좋은 예이다. 그렇다면, 인류세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크루첸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점인 18세기를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산업혁명 이후, 4차 산업까지 오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속도록 증가하면서 대기의 오존층이 심각하게 파괴되어 결국 수많은 생물종을 멸종시키는 등 지구 환경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과도한 밀렵과 가축의 살처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플라스틱과 같은 분해되지 못한 쓰레기더미는 특정 지역에서만 머물지 않고 이동과 축적을 반복하고 있다. 자연중심의 생산-소비-분해 과정으로 이어지는 순환적 시스템을 벗어나 지나친 생산-소비만 뒤따른 인류 중심의 비순환적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분해되지 못한 잉여물들이 새로운 화산을 만들고 있다. 자연의 화산 활동이 대멸종을 초래하던 시기가 아니고 인류의 과소비로 의해 대멸종이 자행되고 있다.

인류세 지층은 특정 지역보다는 지구 곳곳에서 축적될 수 있다. 자연 중심의 대멸종이 있었던 시대는 자연의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인류 중심의 대멸종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까. 신생대에 출현한 인류가 바다를 매립하고 숲과 강을 파헤치고 인간은 물론 다른 생물종의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제6의 대멸종을 이끌고 있다. 제주 해안이 플라스틱과 폐비닐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제주 바다에서 죽어가는 바다거북과 상괭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주도는 신생대 3기에 태어나 제4기의 마지막 빙하기를 거쳐 현재 섬으로 고립되어 있는 섬이다.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제주섬은 곳곳마다 확연히 구분되는 지층이 발달해 있었다. 지구 나이에 비해 아주 어린 구간에 놓여 있는 제주도는 지사학적으로 더 특별한 화석이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인류세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달갑지 않은 층과 화석이 생겨날 판이다. 밀려드는 플라스틱이 광해악 현무암과 수월봉 응회층 사이로 길게 띠를 이루고 있고, 제주 토양층에 위에 쓰레기층과 미세먼지층이 덮고 있다. 보물섬 제주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 위의 생명들이 제대로 숨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미세먼지로 온 국민이 긴장하고 요즘, 서울과 제주를 날아가는 일이 달갑지 않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한 새들은 오죽할까. 해안절벽에서 태어난 어린 매가 바다 위에 비닐을 낚아채거나 미세먼지로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 근본 원인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남 탓 하거나 청정기와 마스크로 풀 일이 아니다. 화창한 봄날이 그리우면, 나부터 뭘 할지를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김완병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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