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제주의 역사문화 숲에는…

[문영택의 한라칼럼] 제주의 역사문화 숲에는…
  • 입력 : 2019. 03.26(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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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문화는 어제의 역사문화와 연결 되어 흐른다. 올해는 법정사 항일운동 101주년, 삼일 항일운동 100주년, 사삼사건 71주년, 해녀 항일운동 88주년을 맞는 해이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은 제주선인들과 더불어 김연일 등 육지에서 항일운동차 건너온 선각자들에 의해 '한라에서 백두로' 번지기를 소망하며 일어난 운동이다.

일제는 항일 의병활동을 앞장서 전개하는 의병장 고사훈이 온갖 회유와 압박에도 굽히지 않자 총살형에 처한다. 제주 항일운동의 견인은 1909년 의병활동이고 그 선봉장은 고승천·김만석·김석윤 등이리라. 지금은 사라봉 모충사 공원에 하나의 탑으로, 승천로라는 지명으로 남아있긴 하다.

1862년 강제검 난과 1898년 방성칠 난에 이어 일어난 1901년 이재수 난 역시 제주의 아픔이다. 사삼의 아픔 넘어에 있는 여러 아픔들도 보듬으려 할 때 우리는 울창한 제주역사문화의 숲을 가꾸게 되리라.

역사는 기록으로 전해지는 과거의 이야기이다. 문화는 역사를 토대로 미래로 이어지는 현재의 삶의 모습이다. 단군보다 4년 앞서 삼을라가 탄강했다 전해지는 제주도는 유구한 역사문화의 고장이다. 삼 을라가 벽랑국 세 공주와 혼인하여 이어지는 탐라선인들의 삶은, 투쟁의 역사가 아닌, 너우렁 나우렁 다우렁의 상생의 문화를 의미한다.

제주선인들에겐 1270년 삼별초가 입도한 것부터가 재앙이었다. 고려도 몽고도 삼별초도 제주선인들에겐 외부세력이었다. 독립적 자치가 이뤄진 탐라에서는 선인들과 친하게 교류를 나누면 친구이고 고통을 주면 적이다. 1374년 제주에 온 최영장군은 목호들과 백년을 살아온 선인들 중 당시 4만 안팎이던 인구 중 3000의 사상자를 낳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에 대한 반감인지 다음 해인 1375년 차현우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제주선인들을 바다 유량의 길로 내몬 것은 조정에서 내려온 벼슬아치들이었다. 제주섬에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목숨건 고향 탈출 행렬이 수백년 이루어지고, 텅 비어가는 제주섬을 방어하려 인조는 1629년 출륙금지령 속에 제주선인들을 가두웠던 것이다.

조선시대 고립무원의 제주선인들은 섬에 안치된 300여 유배인들에게서 여러 영향을 받으며 다양한 역사문화를 쌓기도 했다. 헌마로 나라 구한 김만일 하르방과 큰 부자의 표본인 김만덕 할망을 낳기도 했다. 200년이나 제주섬에 내려졌던 출륙금지령 속에서도 정조대왕의 부름을 받고 물밖 한성과 금강산을 둘러보기도 했던 불세출의 여인 김만덕 할망….

우리는 교과서에서 국가와 민족을 거창하게 배우고 있으나 조상의 삶과 지역의 역사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교육풍토에서 자라고 있는지는 않은지. 문화를 가꾸는 힘은 간절함이고 정성이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후손들이 조상의 삶에서 지혜를 터득케 하는 교육의 장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통한의 아픔인 4·3 71주년을 맞는 우리는 이제 4·3 100주년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한다는 것은 제주의 역사문화의 숲을 더욱 푸르게 조성하는 간절함이기에….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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