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섬개벚나무 한 그루씩 심자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섬개벚나무 한 그루씩 심자
  • 입력 : 2019. 03.20(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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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盲目)'은 한자의 훈으로 보면, 눈은 있지만 사물을 볼 수 없는 눈이란 뜻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일차적인 의미를 확장하여 '앞뒤를 가리거나 사리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상태'의 뜻으로 사용한다. 맹목이 지나치면 단절을 야기하고 폭력으로 치닫기도 한다. 다만 여기까지는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은 들더라도 대상들을 향해 연민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치 인식의 차이를 두고 두 대립적 주장이 갈등하는 경우 맹목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거나 신봉하기까지 한다. 이런 경우의 맹목을 바라보노라면 주장들의 시비(是非)를 떠나 심한 거부감과 괴리를 느끼게 되고 정의로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심지어 진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장인지 의심하게 되고 주장들의 이면에 어떤 다른 의도가 들어있지나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봄이 오면서 황사 먼지는 늘 있는 일이었으므로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삼월이 되면서 풍경을 지울 정도의 미세먼지는 청정하다는 제주까지도 뿌옇게 뒤덮고 말았다. 사상 최악이라고까지 한다. 이게 며칠뿐이라면 다행이지만 사상 최악이라는 말이 계절이 바뀌면서 거듭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제는 제주도마저 새봄에 꽃을 찾아 외출을 하는 일이 즐거움만은 아니다.

요즘, 기후·환경·생태의 변화, 그리고 '오염과 파괴'를 걱정하는 제주도민들이 많아졌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제주라는 섬이 이제는 유토피아의 이미지와 함께 환경, 생태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나 표본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제주도민의 삶과 제주도 구석구석의 실체들을 들여다보면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제주도에서는 3월 7일부터 시작해서 9일까지 새별오름에서 들불축제란 이름으로 난장을 벌였다. 최근 2, 3년 사이 이 축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제주도민들은 물론이고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로부터도 표출되곤 했는데 이는 제주의 환경 및 생태를 소중하게 여기는 의미도 있고 제주의 상징성 회복의 뜻도 들어있다. 청정이다. 그러나 지난 9일 미세먼지가 사상 최악이라고 했고 비가 내리는 중에도 '오름불놓기'를 기어코 저지르고 말았다.

어떤 이유를 들먹이며 설득하려고 해도, 화약과 불을 가지고 신화를 들먹이며 장난질을 했다는 역사의 오명을 씻을 길은 없어 보인다. 645년 전 목호(牧胡)의 난과 70년 전 4·3 항쟁의 흔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제주도민들에게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 제주도민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했고 희생을 치른 치욕스러운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 이 역사의 현장 위에 가장 폭력적인 불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말았다.

차라리, 오래전 제주도의 숲에서 이 계절에 향기와 빛깔을 뿌려주던 섬개벚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야 옳지 않을까. 희생과 억압을 강요받던 역사의 질곡을 거치며 하나둘씩 사라져버렸던 섬개벚나무를 건강한 후손들의 이름으로 새별오름에 한 그루씩 심자. 그래서 제주도의 환경과 생태가 온전해질 수 있도록 회복하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제주의 삶을 왕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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