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멕시코에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기억하다

[양건의 문화광장] 멕시코에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기억하다
  • 입력 : 2019. 03.19(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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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의 사망일이라 언론에 보도 되었던 2013년 3월 6일은, 멕시코의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설계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문화예술계의 보존 희망과 시민운동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철거된 날이다. 그로부터 6년, 앵커호텔은 설계와 달리 지어졌고 '더 갤러리'를 복원하겠다는 행정의 약속은 감감무소식이다. 하지만 제주의 햇빛에 드러난 레고레타의 색채와 공간은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여전하다.

지난 겨울엔 제주의 건축가들과 멕시코로 건축답사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물론 레고레타의 원본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멕시코 건축계에서 그의 선배격인 루이스 바라간(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 Luis Barragan 1902-1988)의 건축을 답사할 목적이었다.

건축비평가들은 멕시코 현대건축의 특징은 유수한 문명과 300여년의 스페인 식민시대를 거친 역사적 배경으로 말미암아, 멕시코의 지역성과 유럽의 보편성이 조합된 '다양성과 정체성'이라 평한다. 이번 기행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멕시코의 국민건축가, '테오도로 곤잘레스 데 레온(1926-2016)'를 알게 된 것은 또 다른 행운이었다. 젊은 시절 르꼬르뷔제에게 수학한 그는 근대건축의 아방가르드적 언어를 지역성과 잘 융합한 건축으로 멕시코 현대건축의 중심에 있었다. 그 외에도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되었던 '바스콘 셀로스 도서관'을 설계한 '알베르토 칼라치', '소마야박물관'을 설계한 '페르난도 로메로'에 이르기 까지 현대건축의 펀더멘탈이 상상보다도 훨씬 대단하였다.

그러나 명불허전! 루이스 바라간의 마지막 주택작업으로 알려진 '힐라디주택'에 방문한 일행은 빛과 색채가 연출하는 공간에 매료되었다. 규브로 이루어진 근대건축의 조형언어 위에서 멕시코 지역 특유의 색채와 강렬한 햇빛의 제어는 특히나 지역성건축에 예민한 제주건축가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다른 주택작업인 '쿠아드라 산 크리스트발 주거단지'는 개인 승마장까지 포함한 주택으로 마당에 거니는 말무리들, 인공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연못에 비친 건축과 하늘이 하나 되어 '침묵의 풍경'을 이룬다. 낙수소리 마저 침묵으로 느껴지는 공간에서 거주자는 스스로 성찰적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바라간의 신념이 경외롭다.

여행의 마지막 날, 드디어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카미노 레알 호텔'에 숙박하며 레로레타 건축의 원본을 만끽하였다. 실제로 레고레타가 즐겨 쓰는 색채와 재료 그리고 디테일에 잊었던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기억이 살아난다. 특히나 로비에 놓여있는 오닉스(Onyx)가구는 더 갤러리에 놓여있던 것과 같은 것으로 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멕시코에서 레고레타를 다시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최근 제주의 건축자산을 보존하려는 일련의 움직임 저편에는 자본의 욕망에 굴복하여 한순간에 사라져가는 건축자산을 묵묵히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 된지 오래이다. 건축과 도시는 결국 무너지고 우리에게 남는 건 기억뿐이라는 선배건축가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렇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제주 땅에 있었다는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양건 건축학 박사·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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