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굴뚝새의 봄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굴뚝새의 봄
  • 입력 : 2019. 03.13(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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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와 경칩이 지나고 나면 대동강물도 풀린다더니 누구도 속일 수 없는 새봄이 우리들 곁에 성큼 가까이 왔다. 어딘가에 깊게 숨어있던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슬금슬금 다가와 봄 처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얼음 풀린 강가에선 긴 겨울잠에서 화들짝 놀라 깨어난 개구리가 큰 눈을 껌뻑이며 세상을 살피고, 산비탈에는 복수초가 언 땅을 헤치고 피어나 지난겨울의 '슬픈 추억'을 말해 주고 있다.? 들판에서는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채비를 하고,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새들도 봄을 알리는 합창을 준비한다.

산수유나무 가지에 앉아 봄기운을 심호흡하며 경쾌한 소리를 질러대는 직박구리, 자작나무 등걸에서 요란스레 새로 거주할 구멍 집을 짓고 있는 오색딱따구리, 녹아가는 땅 위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다니는 까치, 그들은 모두 새봄을 알리는 전령사들이다. 삐삐, 삐웃삐웃, 딱따그르르, 그들의 노랫소리는 새로운 봄의 향연을 축복하듯 요란하게 세상으로 울려 퍼져 나간다.

그런데 굴뚝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멀리 떠나 있던 정겨운 새들의 귀환 속에서 굴뚝새는 어디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어린 시절 날씨가 풀리고 봄이 오면 따뜻한 불기운을 찾아 마을로 내려온 굴뚝새를 자주 보았다. 집마다 굴뚝에서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온 마을에 하얀 연기가 낮게 깔리면 굴뚝새는 어김없이 인가를 찾아와 토담을 넘나들고 굴뚝을 기웃거리며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굴뚝새가 동네 안에서 살던 때에는 사람들 사이도 친숙하고 정이 두터웠다. 굴뚝새는 덩치는 작았지만 사람이 하는 짓과 많이 닮은 새이다. 자식들을 위해 부지런히 먹이를 구하러 다니고 종족 번식에도 열심이다. 옆집 갓난아이가 새로 이빨이 돋아난 소식이며, 앞집 김 서방 부부가 간밤에 사랑을 나누었다는 소식을 전령사가 되어 이집 저집으로 다니며 전해 주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굴뚝새는 굴뚝에 앉아서 세상근심을 다 짊어진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자기 삶의 터전이던 굴뚝과 토담과 마당 장작더미가 모두 없어져 가게 된 것이다. 꼬리를 치켜세우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과 주인집을 순찰하던 굴뚝새의 정겨운 모습이 이젠 인가에서 거의 보기 힘들게 되었다. 굴뚝이 없어지면서 굴뚝새도 사라지고 없다. 굴뚝새는 산속 어딘가 바위 사이에서 숨어 살면서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굴뚝새가 돌아오지 않듯이, 삶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우리 곁에 있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굴뚝새가 사라진 집에서는 입을 벌리고 코골며 잠들어 있는 인간만이 남아 있고, 굴뚝새는 이제 보기 드문 새가 되어 버렸다.

도시는 온갖 매연과 미세먼지로 갈수록 찌들어 가고 꽃과 새들은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잔인하고 이기적인 인간들만이 살아남은 이 세상은 갈수록 살아가기 힘든 공간이 되어갈 것이다. 새가 없고 꽃이 없는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나마 인간이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하면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새와 꽃과 나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굴뚝새가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는 봄날은 우울하다.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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