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풀어낸 그날… 70여 년 고통 씻기길

그림으로 풀어낸 그날… 70여 년 고통 씻기길
4·3생존희생자 18명 그린 원화 등 그림기록전
"비틀거리며 이어간 선에 오랜 아픔과 그리운 가족"
  • 입력 : 2019. 02.20(수) 19:23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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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덕 할머니가 그린 그림.

올해 나이 일흔아홉의 강순덕 할머니. 당시 제주읍 봉개리 태생인 할머니는 1948년 토벌대에 쫓겨 도망가다 부상을 당했고 구타로 상해를 입었다. 70년이 넘었지만 할머니는 지금도 여덟살에 겪었던 그 일을 꺼내놓으면 눈물부터 난다. "멀쩡한 손과 다리로 살아갈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할머니는 이즈음에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그림 그리기다. 몸이 예전같지 않지만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강순덕 할머니를 하이얀 도화지 앞으로 이끈 건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상임공동대표 강정효)가 주관한 생존희생자 그림채록 사업(본보 2018년 11월 28일자 8면)이었다. 그림을 통해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된 사업으로 강순덕 할머니 등 18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물이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 놓였다. 지난 16일부터 시작된 '어쩌면 잊혀졌을 풍경'이란 제목의 생존희생자 그림기록전이다.

이번 작업에는 9명의 제주 미술인들이 생존희생자인 오인권, 홍기성, 고영순, 양창옥, 윤옥화, 강순덕, 김행양, 김기윤, 오태순, 부순여, 송갑수, 양성보, 양능용, 강종화, 안흥조, 박춘실, 장영윤, 김영자 어르신의 그림채록을 맡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아이처럼 그려나간 그림에는 그 시절 아이였을 생존희생자들이 등장한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가족들의 모습도 그려졌다. 말로 다하기 어려웠던, 수십여 년간 잊지 못했던 장면들이 그렇게 살아났다.

'선 하나에 진실을 담다'란 김유경씨의 글처럼, 이 그림들은 사진처럼 사실적이지 않지만 비틀거리는 선 하나에 70여 년의 아픔, 희생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있다. 어느덧 주름진 얼굴을 한 그들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생존희생자들이 그린 원화 그림에 더해 자화상 사진, 인터뷰 영상, 아카이브도 만날 수 있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4월 14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64)723-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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