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발코니만 제대로 만들어도 도시의 표정이 달라진다

[양건의 문화광장] 발코니만 제대로 만들어도 도시의 표정이 달라진다
  • 입력 : 2019. 01.22(화)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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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방문할 때의 첫인상은 가로에 면한 건축물의 표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역사적 건축물이 즐비한 거리를 걸으면 건축표면에 누적된 시간의 지층에 감동하고, 아케이드가 연속된 가로에서는 공성과 사성의 중간 영역에서 전해오는 도시공간의 다양성에 매료된다. 이렇게 처음 비쳐지는 도시의 얼굴이 방문자에게는 그 도시의 정체성으로 각인된다.

그렇다면 제주의 도시표정은 어떠한 모습일까? 제주에서 도시경관이나 건축문화를 주제로 한 학술 행사에 참여하여 보면, 제주다운 도시 풍경의 부재에 대한 우려가 초청 인사들의 단골 멘트이다. 동시에 제주 건축가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송구함으로 좌불안석의 입장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건축가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현재의 제주사회가 자본의 논리에 밀려서 도시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할 도시의 권리를 포기한 결과가 아닌가.

우리는 왜 서구의 역사도시에는 감동하면서도 오래된 건축의 가치나 아름다움을 지켜내려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유럽의 거리공원에 매료되면서도 공적인 영역을 할애하여 건강한 도시공간을 시민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의식에 인색한가? 도시의 탄생 목적이 잉여자본의 소비라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주장을 살피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 제주의 모습은 자본의 욕망이 집중되어 있는 빅뱅의 시기에 들어서 있고, 이럴 때 일수록 자본의 종속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더불어 다소 늦었지만 경제논리에서 벗어나서 실존적 주체로서 도시의 얼굴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본래 얼굴 표정이란 눈, 코, 입의 볼륨과 움직임에 의해 달라지고 풍부해지는 것인데, 투입 자본 대비 면적확보가 최우선인 건축은 마치 잔뜩 부풀린 풍선 위에 그려놓은 우스꽝스런 얼굴표정으로 도시의 풍경을 희화화 한다. 이러한 '풍선건축'의 내·외부 경계면은 깊이가 있는 표면(surface)이 아니라 얇은 피막(skin)이 되어 자신만의 표정을 지을 여력이 없다. 도시의 표정에 정체성을 담기 위해서는 자본의 요구에 뺏겨버린 이 경계면의 깊이가 절대적이다.

풍선건축의 사례로서 우리들의 삶에 깊숙이 다가와 있는 건축이 '확장형 발코니'가 적용된 공동주택이다. 정상적인 방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창가 쪽에 두 줄을 긋고 발코니라 명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우리들의 집에서 벌어진다. 전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 수 없다는 취지에서 확장형발코니가 합법화 되고난 후 대한민국의 공동주택에서 정상적인 발코니는 사라졌다. 발코니의 종말은 삶의 질을 떨어트리기도 하지만 전국 어디나 유사한 무표정의 공동주택으로 말미암아 도시경관을 획일화 한다.

제주다운 도시경관이 사회적 요구라면, 작은 제안이지만 제주에서는 확장형 발코니가 인정되지 않는 건축조례를 시행하자. 시중에 떠도는 똑같은 단위주거의 평면이 제주만의 평면으로 바뀔 것이며, 건축가들도 발코니 1.5m의 깊이에서 다양한 표정을 담은 건축을 디자인할 기회를 얻어 도시경관의 책무를 다할 수 있다. 전면적 시행 전에 공공에서 발주하는 임대주택이나 행복주택에 시범적으로 운영하면서 도시경관이나 주거의 질적 측면에 장단점과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이다. 이러한 소소한 움직임으로 시작하여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제주만의 도시표정이 드러난다.

제주다운 도시표정을 만드는 것은 건축가들만의 사명이 아니다. 도시권을 찾으려는 사회적 요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개성 있는 발코니에 앉아 스치는 제주의 바람 속에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소소한 권리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도시 표정은 달라진다.

<양건 건축학 박사·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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