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균등사회… 문화수준 높아"

"제주는 균등사회… 문화수준 높아"
[동란의 제주도 찾아서] (중) 제주에 대한 인식
다른 지방 인사·청년단체원 처사에 도민 불만
제주환경 파악·시정만이 현 단계 유일 수습책
  • 입력 : 2018. 12.11(화) 18:03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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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발생 직후의 제주사회와 도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호남신문'의 기획기사가 발굴(본보 10일자 5면)된 가운데 본보는 이 기획기사를 토대로 ▷4·3초기 사회 분위기 ▷제주에 대한 인식 ▷4·3 발발 원인 등으로 나눠 비극적인 사건 초기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호남신문 1948년 7월 21일자 '동란의 제주도를 찾아서' 6회는 제주의 미풍양속과 도민 성향, 습속, 교육수준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신문은 "(제주가)본토와 멀리 격리돼 교육시설이 부족하고 지적 수준이 저급하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도민의 실정을 모르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소개하며 "육지의 1면 1국민교에 반해 이 곳 제주도는 1부락 1국민교, 1면 1중학이라는 육지에서는 본받지 못할 만큼 교육시설이 발달돼 있다"고 설명했다.

 도민 성향에 대해서는 "제주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봉건제도가 이입·발달할 기회가 없어 사회적으로나 가족적으로도 어느 특권층을 용납 안할 뿐더러 무리한 제압이 있을 수 없는 균등사회"라면서 "아울러 도민은 극히 개방적이고, 근로 관념도 철저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풍과 의타심이 없는 생활욕의 전통이 계승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진취성이 많은 제주도민에게 고립됐다는 악조건은 필연적으로 외부와의 왕래를 빈번케하여 일본과 직접 문화 교류가 심한 까닭에 보편적으로 보아 본토보다 문화 수준이 높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제주의 특성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항쟁의 역사'가 뒷받침 됐다고 이 신문은 내다 봤다.

 호남신문은 "혁명적 선구적 교훈을 남긴 조선말 이재수의 일발은 관의 도민 억압에 대한 통렬한 반항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며 "이보다 수백년 앞에도 목관의 과중한 억압에 분발한 도민은 방성칠을 선두로 철두철미 반항해 행정의 시정을 기하였다는 역사와 일제시의 3·1독립운동의 투쟁, 유명한 해녀폭동사건 이밖에 허다한 학생운동사건 등 수많은 청년층에 애국심과 전진적 사상을 널리 파급시키게 했다"고 강조했다.

 제주도 고유의 생활풍속이 외부 사람에게는 동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도민의 배타심에 기인된 것이 아니라 도민과 함께 근로 생활과 생활풍속을 같이 한다고 하면 그들은 오히려 환영할 것"이라며 "이 섬의 단결력이 강한 것도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천연적인 생활환경과 인심, 습속 감정이 동일하기 때문이며, 이를 무시하고 타도에서 들어간 일부인사의 처사가, 모 청년단체원들의 처사를 맺어 도민으로 하여금 불만을 갖게 했다"며 4·3의 원인이 내부에 있지 만은 않다고 봤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무자비하던 일제의 탄압도 이 도민에게는 완화정책을 안쓰면 아니되게 하였던 것이니 제주만의 독특한 생활에 대한 강한 투쟁력과 환경을 여실히 파악하는 시정만이 현 단계의 유일한 수습책"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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