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영주(瀛洲)를 알면 제주가 보인다

[문영택의 한라칼럼] 영주(瀛洲)를 알면 제주가 보인다
  • 입력 : 2018. 12.11(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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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널리 쓰이는 말 하나가 영주이다. 신선들이 사는 섬인 영주는, 중국 고서에 제주도를 동(東)영주라 기록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인 한라산의 오래전 이름인 영주산. 진시황은 동남동녀 500쌍과 함께 서복을 신선들이 사는 영주산에 보냈다고 중국 '사기'는 전한다. 이는 서불과차에서 비롯된 서귀포 지명의 유래이기도 하다.

영주관은 제주의 객사 이름이다. 객사는 임금님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지방관이 초하루와 보름에, 부임하는 지방관도 가장 먼저 찾아가 예를 올렸던 곳이다. 왕명을 받고 내려온 경래관들의 숙소이기도 한 객사는, 암행어사의 탐관오리 징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객사에는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과 독립된 담장이 둘러쳐저 있었고, 관아 건물 중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의 제주북초등학교 인근에 있었던 제주목의 객사는 중요한 건물임에도 복원이 안 된 것은, 1907년 공립제주보통학교와 사립의신학교가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영주관 역시 원래 자리 어딘가에 복원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역사문화유적이다.

영주지는 도내 향토 문헌 중 가장 오래된 서책의 이름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발간된 것으로 여겨지는 영주지는, 탐라의 개벽설화 등에 626자의 한자로 구성된 소책자이지만, 제주의 고대사를 규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고서이다. 영주산은 정의현의 현성이던 성읍에 있는 높이 326m의 산 이름이다. 영주음사는 도내 한학자들이 한시 창작과 감상을 위해 1930년에, 영주연묵회는 1960년에 서예가들이 만든 조직의 이름이다.

영주십경은 제주도의 많은 절경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10곳을 품제한 데서 비롯된다. 품제(品題)란 빼어난 경치를 골라 이름 붙이는 선인들의 문예활동이다. 생명력 있는 품제에는 오랜 세월 절경을 찬양한 시화와 이를 평하는 글들이 있었다. 품제 된 절경에는 제영(題詠), 즉 그곳을 찬양하는 시가 있게 마련이다.

탐라순력도로 널리 알려진 이형상 목사는 제주팔경으로 한라채운, 화북재경, 김녕촌수, 평대저연, 어등만범, 우도서애, 조천춘랑, 세화상월을 품제하였었다. 그러나 이목사의 팔경은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여 고서로나마 전하고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제주에는 팔경보다 십경으로 품제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제주선인으로 매계 이한우(1823-1881) 선생이 있다. 당시 남국태두(南國泰斗)로 칭송받기도, 삼천서당에서 훈학활동을 펼치기도 했던 매계 이한우는, 우주만물이 생성되고 변화되는 자연의 생성이치에 따라 영주십경에 품제를 하고 칠언율시 한 수씩을 지었다. 성산출일, 사봉낙조, 영구춘화, 정방하폭, 귤림추색, 녹담만설, 영실기암, 산방굴사, 산포조어, 고수목마가 그것이다.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해가 뜨고 지니 사계절이 운행되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더니 동식물과 사람이 태어나더라. 이 멋진 자연우주관이 있어 제주가 더욱 빛나고 있다!

팔경보다 십경을 선호하는 이유로는 절경이 많은 데서 오는 제주선인들의 자부심과 함께, 십진법이 수의 기본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주십경을 소재로 한 수많은 시 가운데서도, 매계 선생의 시에는 세상의 윤회이치가 담겨 있으니…. 영주십이경으로 제주선인들은 용연야범과 서진노성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러한 선인들의 품제와 제영을 후손들과 이웃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 이 또한 제주의 자랑이고 즐거움일 것이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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