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아닌 총검에 산·바다 뺏겨 살 수 없다"

"법 아닌 총검에 산·바다 뺏겨 살 수 없다"
[동란의 제주도를 찾아서] (상) 4·3초기 사회 분위기
억압·통제된 분위기 속 애꿎은 도민만 피해
  • 입력 : 2018. 12.10(월) 18:05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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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신문 '동란의 제주도를 찾아서' 1회, 2회 지면. 출처=국립중앙도서관

육지에서는 팔로군·日패잔병 개입설 떠돌아

마을에는 청년 하나 없고 백발 노인들만 목격


제주4·3사건 발생 직후의 제주사회와 도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호남신문'의 기획기사가 발굴(본보 10일자 5면)된 가운데 본보는 이 기획기사를 토대로 ▷4·3초기 사회 분위기 ▷제주에 대한 인식 ▷4·3 발발 원인 등으로 나눠 비극적인 사건 초기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당시 호남신문은 제주 곳곳을 누비며 4·3 초기 제주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학교 건물은 병사로 변하고 마을엔 청년들 하나 구경할 수 없고,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울부짖는 도민들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취재했다.

 호남신문 취재단은 첫 일정으로 '제주도 군구읍면장 연석회의'에 참석해 1948년 6월 15일까지 토벌대와 좌익세력의 충돌로 무고한 도민 292명이 사망하고, 9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조사 결과를 확인했다.

 육지부에서 돌고 있는 초기 제주4·3에 대한 소문이 나온다. 최경록 연대장은 기자단에게 "육지에 유포된 팔로군이 왔느니, 일본패잔병이 있느니 하는 것은 무책임한 허위날조의 낭설"이라고 일축한다. 아울러 포로수용소 주위에서 사식을 넣으러 모여드는 할머니와 어머니, 아내들이 광주리를 움켜안고 땡볕 아래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보인다고 암울한 상황을 묘사했다.

 억압되고 통제된 분위기 속에서 신음하는 도민들의 모습도 그려졌다.

 산지항에서 만난 60대 노인은 "제주도 백성은 바다와 산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는데 이제는 바다도 뺏기고 산도 뺏겨 살 수가 없다"며 "법 아닌 총검에 뺏겼다"고 어민들의 심경을 전했다. 또한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도민의 생활고는 한층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화북에서는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고 늙은 사람들만 일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부분에서는 "젊은이들은 어디가고 머리털 하얀 할머니네들만 일을 하는 것일까"라며 "기구한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제주의 현실은 너무나 처참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찰의 바리케이트 설치노역에 동원된 450명의 화북 주민을 만났을 때는"'이래서야 민중이 살 수가 있어야지요', '제발 좀 살게 해주세요'하고 부처님이나 만난 듯 애걸하는 어조로 하소연을 했다"면서 "흰머리 날리는 70 노파는 주름진 눈시울에 눈물을 가득 머금으면서 '늙은 것들이야 죽든 말든, 젊은사람이 집에 발을 붙일 수가 없다고 울부짖었다"고 기록했다.

 함덕리에서 주민들을 만날 때는 "부락민들에게 시계와 돼지, 가재도구를 강탈하고 심지어는 처녀까지 내놓으라고 했다. 이러한 만행은 도대체 누가 범하고 있는 걸까?"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당시 함덕에서 이발소 폐쇄로 머리를 자르지 못하자 '머리가 길면 산사람'이라고 야단을 받고, 함덕 경내 통행증은 30원, 함덕 외는 50원, 고기잡이는 100원 등 통제된 분위기와 호적에도 없는 젊은 아들과 딸을 내놓으라는 태도에 질색하는 도민들의 모습도 그려냈다. 북촌에서 만난 노인들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 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주택 300호 가운데 200호가 소실된 저지리에 가서는 "불 냄새가 아직도 풍겨지고 있고 군데군데 남아 있는 기둥 위에는 까마귀만이 까악 거리고 있다"며 "좌우양측에서 복수적으로 방화한 결과 이런 참상을 빚어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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