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평화책방 문 닫는다… "기억의 장소 또 잃네"

제주 강정평화책방 문 닫는다… "기억의 장소 또 잃네"
'강정을 평화책마을' 취지로 전국 작가 등 참여 5년 전 개관
내년 공간 임대 계약 연장 안돼…보유 장서는 통물도서관으로
  • 입력 : 2018. 11.25(일) 18:06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지난 24일 강정평화책방에서 열린 '조금 이른 송년회'에서 첼리스트 문지윤과 '뚜럼브라더스'의 박순동씨가 공연을 벌이고 있다. 진선희기자

첼로가 대신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첼리스트 문지윤이 강정에서 길어올린 '일렁이는 물결'로 2시간이 가까워지는 모임의 마지막을 채웠다. 강정에 늘 빚을 지고 있는 마음이라는 '뚜럼브라더스'의 박순동은 '먹엄직이 살암직이' 등으로 '그럼에도 살아가자'고 했다.

지난 24일 저녁 서귀포시 강정초등학교 정류장 인근에 자리잡은 강정평화책방. 이곳에서 강정책마을친구들이 '조금 이른 송년회'를 열었다. 건물주가 공간 임대 계약 연장이 어렵다고 밝혀 내년부터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정평화책방 서가에 있는 책들은 내달 초 강정 통물도서관으로 옮겨진다.

2013년 4월 문을 연 강정평화책방은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강정을 평화책마을로 만들자며 출발했다. 강정평화대행진에 참여해온 한국작가회의 회원을 중심으로 2012년부터 강정평화책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듬해엔 강정책마을 10만대권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관심이 잇따랐고 그 첫 결실인 강정평화책방 개관 무렵엔 5000권이 넘는 책이 모였다.

이날 송년회에는 강정마을 주민은 물론 강정평화책마을 준비반장을 맡았던 함성호 시인, 책장을 직접 짰다는 백가흠 소설가, 김재훈 시인, 제주작가회의 이종형 회장과 홍경희 사무국장, 제주 김병심 시인, 강정기록화 작업을 진행중인 고길천 작가 등이 찾았다. 평화책방 지기였던 세리씨는 그동안 공간을 이용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의 마음을 나타냈다. 이들은 강정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밀려나는 현실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도 '또 다른 시작'에 대한 기대감을 나눴다.

함성호 시인은 "주민들한테 강정마을을 도서관으로 만들자는 계획을 알리면서 30년 프로젝트라고 말씀드렸는데 겨우 5년이 지났다. 남은 25년동안 30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싶다"며 "기억의 장소를 하나 잃어버리는 대신에 또 다른 대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강정마을의 한 주민은 "강정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10년 뒤 마을에 왔을 때 찾을 수 있는 공간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고 그래서 마을에서 끈을 놓지 않고 왔다"는 소회를 전했다. 강정마을회장을 지낸 강동균 강정책마을친구들 공동대표는 "평화책방 운영이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작은 규모라도 자부심을 갖고 책방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보겠다"고 말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3058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