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생각하며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생각하며
  • 입력 : 2018. 11.14(수) 00:00
  • 김경섭 수습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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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시작되면서 몸의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에어컨을 늘 틀고 지낸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냉방병의 병변이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청탁을 받은 원고를 마무리하며 스트레스가 몸의 이상에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했다. 한의원을 찾아 몸의 균형을 찾기 위한 약을 지어서 한 달 정도 먹으면서 나아지는 듯했으나 십 킬로 정도의 체중 감소를 확인하고는 종합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소화는 생명체의 항상성을 담당한다. 소화기관에 병변이 있어 문제가 생겼다면 당연히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한 통증을 동반하게 된다. 평소 적절한 음식을 섭취하고 섭생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 기준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가볍거나 심한 정도의 차이지 언제나 병을 달고 살아간다. 소화기관 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의 어떠한 기관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검진으로 진단하며 예방하는 일이 최선이다.

검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스스로의 판단에 맹목하다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황망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왜 자신에게 그런 병변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건강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오직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게 된 까닭을 헤아릴 수 없게 된다. 억울하다는 생각만으로 대상도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몸의 병을 얻고 정신마저 쇠락해져갈지도 모른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저서가 있다. 루스 베네딕트는 인간의 사상과 행동의 의미를 심리학적으로 파악하려 했고 문화와 인성, 혹은 문화와 국민성 연구의 기초를 만들었다. 『국화와 칼』은 일본과 전쟁을 하려던 미국 정부가 일본의 국민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인과 그 문화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여 얻어낸 결과물이다. 일본을 직접 관찰하지 않고 쓴 인류학 서적으로도 유명한데 많은 평자들로부터 '동굴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연구 방법이란 평을 받았다.

제주도의 문제도 객관적 거리에서 바라봐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 예산 규모로 본다면 제주도는 백분의 일에 해당한다. 우리 스스로 과대망상에 빠져서 십분의 일처럼 여긴다면 여기서부터 소화불량에 걸릴 수밖에 없다. 인구 증가와 관련해서 제주도 인구가 70만이므로 예산도 마땅히 7조원 이상이라야 맞다. 그런데 제주도의 예산은 5조원에 불과하다. 인구 비례로만 따진다면 이는 영양실조 수준이다. 특히 제주도의 산업 특성으로 본다면 심각한 결핍일 수밖에 없다.

플라톤의 『국가』에는 '진리와 실재'의 제시가 비웃음과 조롱을 당한다는 '동굴의 비유'가 있다.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환기하고 나아가 실재가 무엇이고 가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진리와 실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와 고정된 인식과 편견인 독사(doxa)를 나누는 선분의 비유(analogy of the divided line)와 연결되어 있다.

제주도의 문제를 제주 안에서 바라보는 초점은 대부분 독사(doxa)에 빠질 위험이 있다. 개발과 보존의 문제, 인구 감소 추세에서의 제주도 인구 증가의 문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불균형 그리고 청정의 가치와 오염·파괴의 문제 등은 그림자를 어루만지는 것으로는 그 심각성을 인식할 수가 없다. 제주도 밖에서 바라본 충고들을 부끄럽더라도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월정리, 신엄리 바닷가 카페들이 제주를 찾는 이유에서 손꼽힌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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