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계 이 사람] (18)고길천 작가

[제주문화계 이 사람] (18)고길천 작가
"전업으로 버텨온 길… 강정 기록화 완성 목표"
  • 입력 : 2018. 11.05(월)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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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뒤 재기해 지난해부터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고길천 작가는 "오래도록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만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선희기자

제주현대미술관서 초대전
4·3과 생태·개발 문제 등

1990년 이후 근작까지 소개
공감과 드러냄·비판의 예술
이땅의 현실 다양한 매체로

2009년 어느 날, 그는 제주4·3 집단학살지인 제주공항 유해발굴 현장에 있었다. 그곳에 묻힌 희생자의 옷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길이었다. 그는 프로타쥬 기법으로 그 옷을 떴다. 프로타쥬는 종이 등을 대고 그 위를 연필이나 다른 도구로 문질러 형태를 드러내도록 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듬해 탐라미술인협의회 제주4·3미술제에 출품한 '60년 만의 외출'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이 땅의 정치·사회·문화 이슈 등을 지속적으로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건 작업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발디딘 뒤 치밀하고 끈질기게 그곳이 들려주는 사연에 귀기울인 결과다.

제주도립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이달 7일부터 '바라본다'는 제목으로 초대전을 갖는 고길천 작가. 어느 덧 60대 초반이 된 그는 1986년 귀향해 제주에서 전업 미술인으로 버텨오며 4·3미술에서 생태미술까지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바라보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회화, 판화, 설치, 영상 등 작업의 주제와 내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매체를 취해왔다.

"지난 역사를 거슬러 가면 고려시대에 탐라가 복속된 이래 제주가 한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어요. 식량 수탈, 생명 수탈, 자본에 의한 수탈까지 한반도에 의한 수탈만 있었죠. 오늘날의 강정에서 그걸 느꼈습니다."

그는 1990년 어머니가 겪은 4·3트라우마를 소재로 '머리 속의 바늘' 등을 그렸고 2000년대 초반부터는 종이에 목탄 드로잉 등으로 담은 '눈 먼 새' 연작을 통해 환경 오염과 개발의 문제를 짚었다. 그의 발길은 자연스레 강정으로 이어졌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현장을 매일이다시피 오가다 2013년 8월 강정평화대행진 마지막 날 뇌출혈로 쓰러진다. 강정 기록화를 10점 정도 그린 때였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기분이었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내게 남는 건 작업 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컴컴하고 좁은 길을 빠져나왔지만 고 작가는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움직임이 많으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후유증 때문이다. 그래도 줄긋기부터 다시 시작하며 지난해부터 왼손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병상을 벗어나 강정 기록화를 더 많이 그렸다. 지금까지 40점을 제작했고 앞으로 20점을 더할 예정이다. 이들 기록화는 강정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에서 소장하기로 했다.

지난 1일 제주시 중앙성당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남한테 보기 좋은 그림은 내 능력이 안되더라"며 전업 작가의 고충을 농담처럼 털어놨다. 대신 그는 "내가 하고 싶었던 작업"으로 1990년 이후 현재까지의 작품 세계를 제주도민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가졌다. 제주 개인전은 이번 초대전이 처음이다. 머리로 깨닫는 일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 그 대상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했듯, 아픔에 공감하고 드러냄과 비판의 역할을 예술로 수행해온 고 작가의 작품이 그같은 울림을 줄 듯하다. "오래도록 작업할 수 있는 건강만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품은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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