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 건너 별빛 밝힌 이어도로.. 문충성 시인 별세

제주바다 건너 별빛 밝힌 이어도로.. 문충성 시인 별세
1977년 등단 이래 '제주바다' 등 시집 20여권
"제주 소재 시는 가난·굴욕 해소하려는 꿈꾸기"

  • 입력 : 2018. 11.03(토) 23:02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문충성 시인.

'누이야 원래 싸움터였다/ 바다가 어둠을 여는 줄로 너는 알았지?/ 바다가 빛을 켜는 줄로 알고 있었지?/ 아니다 처음 어둠이 바다를 열었다 빛이/ 바다를 열었지 싸움이었다'로 시작되는 '제주바다 1'. 이 시를 빚어낸 문충성 시인이 제주 바다를 건너 '별빛 밝혀 노저어 가자'고 했던 '이어도'로 떠났다. 향년 80.

3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한 문 시인은 한국외국어대와 동대학원 불어과(박사)를 졸업했고 제주신문 문화부장, 제주대 교수, 제주작가회의 초대 회장 등을 지냈다. 1983년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소년 시절 '학원(學園)'에서 주목할 '학생 시인'으로 꼽혔던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절필한 채 제주에서 거친 삶을 보낸다. 1975년 새로이 붓을 든 시인은 토속적인 정서 속에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으로 시단에 발을 디딘다.

그는 1978년 '제주바다' 이래 '섬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내 손금에서 자라나는 무지개', '떠나도 떠날 곳 없는 시대에', '방아깨비의 꿈', '설문대할망', '바닷가에서 보낸 한철', '허공', '백 년 동안 내리는 눈' 등 20여 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연구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와 한국의 현대시'도 있다. 2003년에는 제주대 교수직을 마치는 시인의 정년을 기념해 제주지역 문화계 후배들이 시선집 '슬픔 혹은 새에게'를 묶어 헌정했다.

시인은 '제주바다'에 실린 글에서 "어쩌면 나의 한 생애는 한 방울 눈물에 지나지 않을 것도 같다. 그것은 자고 깨면 언제나 이마에 걸리는 수평선이나 제주 바다일 수도 있다"며 "돌, 바람, 바다, 산, 외할머니, 잠자리, 해뜨는 아침과 저녁이 나를 키워온 것"이라고 썼다. 제주4·3과 한국전쟁 등 고난의 현대사를 거쳐온 그의 삶에서 제주를 소재로 다룬 시는 가난과 굴욕을 해소하려는 꿈꾸기나 다름없었다. 프랑스어 이상으로 '제주도 방언'을 사랑한다고 했던 그다.

빈소는 경기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5일 오전 8시30분. 유족으로 부인 김청신씨와 1남 2녀. 연락처 010-2242-1444.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72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