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의 만남 "형 꼭 고향에 같이 가자"

70년 만의 만남 "형 꼭 고향에 같이 가자"
본보 실향민 보도 접하고 美 하와이서 제주 찾은 고봉식씨
6·25전쟁 당시 헤어져 연락 끊겨… "죽은 줄로만 알았다"
"이북서 담 하나 두고 유년시절 보냈던 친구" 감격 눈물
  • 입력 : 2018. 11.01(목) 19:05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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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제주시 이도2동 라마다 제주시티호텔에서 평안남도 출신인 조은호(85) 할아버지가 미국 하와이에서 건너 온 고향 친구 고봉식(84) 할아버지와 70년 만에 만났다. 강희만기자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는 데 얼굴이 딱 은호형이에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곧장 한국에 있는 조카에게 연락해 소재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제주시 이도2동 라마다 제주시티호텔에서 감격적인 만남이 성사됐다. 본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보도한 '실향민 조은호 할아버지(4월 27일자 4면)'를 보고 미국 하와이에 있던 조 할아버지의 고향 친구인 고봉식(84) 할아버지가 제주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초담리에서 담 하나를 두고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죽마고우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인해 1950년 12월 두 사람 모두 남쪽으로 피난을 가게 됐고, 이후에는 서로 연락이 끊긴 채 70여년 동안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다.

 

조 할아버지와 고 할아버지가 유녀시절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고 할아버지는 "1살 위인 은호형이랑은 바로 옆집에서 살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다. 가까이 살다보니 딱지치기, 화투, 자치기 등 함께 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선명하다"면서 "내가 15살 때 피난을 갔으니까 딱 70년 만에 은호형을 만난 것"이라고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 할아버지는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갑다"며 "당시 봉식이네는 포도 농장을 하고 있어서 그 곳에서 같이 포도를 따 먹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고 할아버지가 조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이유는 또 하나 더 있다. 피난 과정에서 잃어버린 큰 누나의 행방을 조 할아버지가 혹시 알고 있지않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불행히 큰 누나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지만 조 할아버지가 소속돼 있는 '평안남도 대동군민회'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해 앞으로 행방을 더 알아보기로 했다.

 동네를 뛰어 놀던 10대 아이들이 이제는 80이 넘은 노인이 돼 만났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같았다. 바로 함께 고향 땅을 밟아 보는 것이다. 고 할아버지는 "형 꼭 같이 고향에 갑시다"라고 말하면서 조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한편 고 할아버지는 2일까지 제주에 체류하면서 조 할아버지와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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