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미술 비평가를 키우자

[김연주의 문화광장] 미술 비평가를 키우자
  • 입력 : 2018. 10.30(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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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드르와 키치', '모더니니스트 회화' 등은 미술이론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게 되는 논문이다. 이 글의 저자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20세기 중반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국의 미술 비평가다. 그는 형식주의 비평을 이끌었다. 형식주의 비평은 작품을 분석할 때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전의 비평과 달리 작품의 형식에 주목했다. 그가 쓴 '예술과 문화(1961)'는 현대미술에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집이며, 당시 그린버그는 미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린버그의 글은 잭슨 폴록, 모리스 루이스 등의 작가를 유명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 과장을 하면 미니멀리즘이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탄생시켰다. 그의 이론은 추상표현주의 이후 등장하는 예술 경향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여전히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에는 미술 비평가가 그린버그와 같은 큰 영향력 발휘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술 비평가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며, 매년 세계 주요 잡지나 신문 등에서 발표하는 세계 미술계를 움직이는 사람 중에 비평가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디렉터,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컬랙터, 작가만이 아니라 심지어 철학자까지 있는데도 말이다. 작품의 의미보다 작품의 가격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인 듯 보인다. 신문에 등장하는 미술관련 기사는 전시소개를 제외하면, 높은 가격에 작품이 거래되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미술비평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미술시장의 시대다. 그렇다면 미술비평은 이제 필요 없는 것일까?

미술비평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특정 작가와 작품을 분석하는 미술비평은 19세기 이후에 시작되었다. 몇몇 미술 비평가는 작품을 분석하며 작품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용어를 제시했는데, 이것이 미술사조의 이름이 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루이 보셀은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로저 프라이는 후기 인상주의, 헤럴드 로젠버그는 액션페인팅, 로렌스 알로웨이는 팝아트라는 미술 사조의 이름을 탄생시켰다. 긍정의 의미로 사용했던 부정의 의미로 사용했던지 간에 이러한 용어는 작가와 작품을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작품이 갖는 의미를 명확하게 만들어주었다. 미술비평은 동시대에 제작되는 작품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를 찾아내어,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품을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제주도의 미술계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 말로 제주도에는 미술 비평가가 필요하다. 작품, 전시, 행사 등이 갖는 의미가 이론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미술 비평가가 성장하기 어렵다. 우선 미술이론 관련학과가 없기 때문에 미술 비평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드물다. 또한 미술 비평가가 활동하기 위한 미술잡지와 같은 매체가 없다. 물론 글을 쓸 비평가가 없으니 잡지를 만들기 어렵겠지만, 잡지가 없으니 비평가도 있을 리 없다. 비평가를 지원해주는 제도도 없다. 당장은 지원할 비평가가 적어도 지원제도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오늘날 미술계 안에서 큰 영향력이 없어 보이지만, 비평가의 글이 없다면 미술계에는 방향을 잃고 수많은 작품이 여기저기서 표류할 것이다. 현재 제주도 미술계는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 넘치는 에너지가 방향을 잃고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비평은 꼭 필요하다. 미술 비평가를 키우는 일이 막막해 보이더라도 하나씩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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