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의 문화광장] 도시괴담 vs 과학저널리즘

[이한영의 문화광장] 도시괴담 vs 과학저널리즘
  • 입력 : 2018. 10.23(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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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시달렸던 지난 여름 한 일간지의 기사에서는 '국내 선풍기 판매량은 해마다 400만대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며 최근 들어 수면 중에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고급형 제품에 대한 관심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라고 선풍기 업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였다.

아마도 긴 폭염에 강력한 냉각기능의 에어컨과 날개 없는 수입 선풍기의 선전에 밀린 국내 선풍기 업체를 응원하는 여름특집 기획기사려니 생각하고 읽다가 '수면 중에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고급형'이라는 업체 관계자의 시대착오적 인터뷰 내용에 '과연 고급형 선풍기는 무엇이며, 저가형 선풍기는 수면에 안전하지 않다는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에서 고급형 기능이라 함은 타이머 즉, 미리 수면시간을 예약해 꺼지는 기능과 자연풍, 즉 수면 시 마치 자연상태의 바람처럼 자연스러운 바람형태를 말한다. 몇몇 업체는 이 기능을 인공지능이라 과장 광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수면시 선풍기를 켜고 자면 어떻게 되는가?

대한민국 국민의 50% 이상은 아직도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켜고 자면 질식한다고 믿는다. 세계적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Fan Death'(선풍기 사망설)는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켜놓은 채로 잠을 자면 사망할 수 있다는 일종의 미신으로 대한민국 내에서만 존재하는 도시괴담이며, 과거 한국언론들은 매년 여름이 되면 이 이야기를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다. 이들이 이렇게 믿게 된 비과학적 도시괴담의 기원은 어디일까?

선풍기로 인한 사망사고 최초 기사로 1972년 7월18일 한 일간지에는 "서울 영등포구 000동 전00(31)씨가 집에서 선풍기를 켜놓은 채 숨졌다"는 기사가 나온다. 당시 경찰은 "방 안에서 선풍기를 장시간 쐬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고 사망원인을 밝혔다. 이후 1973년 서울 동대문구 000동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다 죽은 이발사 부부의 안타까운 사망사건을 부검한 00대학 부속병원 박00 내과전문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선풍기를 가까이 틀어놓고 잠들면 내쉬는 숨이 원활치 못해 시간이 오래가면 체내에 탄산가스가 쌓여 죽을 수 있다"고 사망원인을 과학적 원리까지 동원하여 설명해 심증을 확증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 이 도시괴담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재생산되어 매 여름이면 각 매체에서 선풍기 사망 기사가 쏟아졌다. 역설적으로 당시 선풍기 도시괴담은 국내 선풍기 기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1차, 2차 석유파동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전기 사용량을 아끼는 순기능도 있었다.

이제는 선풍기를 켜고 자면 감기가 걸릴지언정 죽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 충격적 기사를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아직도 선풍기 바람에 대한 막연한 Phobia(공포증)가 있다.

공포증이란 객관적으로 볼 때 위험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은 상황이나 대상을 필사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증상을 말하며 프로이트는 막연한 불안이 공격적인 형태를 띠는 불안 히스테리의 일종이라 하였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거나 낯선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경계하거나 두려워한다. 단지 중립적인 '모르는 것'이 거의 자동적으로 '두려운 것'이 된다. 최근 제주에 불거진 몇몇의 도시괴담도 이와 같은 사례이다. 근거 없는 도시괴담에 따른 신종 포비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과학적이고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과학저널리즘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한영 제주해녀문화보존회장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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