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동네 서점이 진짜로 팔아야 하는 것

[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동네 서점이 진짜로 팔아야 하는 것
  • 입력 : 2018. 10.17(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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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을 살 때 규칙이 하나 있다. 새 옷을 하나 사면 가지고 있던 옷 중 두 개를 버리는 것이다. 다른 물건보다 옷은 상대적으로 충동구매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몇 년 전부터 정한 규칙인데, 나름 저 규칙 이후로는 충동구매도 덜 하게 되고 새 옷을 살 때마다 손이 잘 안 가는 옷들은 저절로 정리가 되어서 아주 만족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옷들이 충분히 많으므로 빨리 더 잘 버려서 옷 하나 살 때 하나만 버리는 1대1 매치를 만드는 게 목표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서점에 책을 들일 때 세운 규칙이 하나 있다. 한 종이 다 팔려야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책을 들여놓을 것. 우리 서점의 규모와 나의 기억력을 감안했을 때 내가 생각한 디어 마이 블루 서점의 적정 규모는 200종이다. 권당 적게는 3권에서 많게는 10권까지 들여놓으니, 평균 5권씩만 받는다고 해도 1000권의 책이 한 공간에 있게 된다. 이게 다 팔아야 하는 책인 거다.

애초에 이 정도 규모로 운영하기로 정한 것은 책이란 게 독점 상품이 아니라서 우리 서점에 없다고 세상 천지에 구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 서점을 일부러 찾아오든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오든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리 살 책을 정하고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동네 서점이란 곳이 그렇지 않은가. '가보고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살까?' 정도의 기분으로 일단 와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동네 서점에서 인테리어로 책을 가득 채워야 하는가는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나 역시 처음 서점을 시작할 때 벽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책장에 빼곡히 책이 꽂힌 서점에 대한 로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어차피 아무리 많은 책을 들여놔도 동네 서점이 도서관이나 교보문고가 될 수는 없다. 적더라도 한 권, 한 권이 잘 보일 수 있게 진열하여 책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내가 우리 서점에서 소홀히 대하는 책 없이 다 관심을 가지고 팔 수 있도록 책의 종류와 양을 조절하는 것, 이것이 나에겐 서점 운영에 있어 더 중요한 문제이다.

대신 우리가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서비스다. 우리 서점을 영어로 'bookstore'라고 하지 않고 'bookshop'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흔히 상점을 얘기할 때 'store'와 'shop'을 크게 구분하진 않지만 단어들을 떠올려보면 그 의미적 차이를 알 수 있는데, 'store'는 어원 자체가 '저장하다, 비축하다'의 뜻을 갖고 있는 만큼 많은 상품을 쌓아놓고 진열해서 파는 형태이고, 'shop'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주인의 기술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이다. 우리가 적은 양의 책이지만 손님 한 분, 한 분과 소통하며 책을 설명해주고 추천해주고 심지어 읽을 공간과 포장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이런 모든 과정은 독자가 진열된 책 중 하나를 골라서 계산하는 단순한 형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일본 긴자의 모리오카 서점이 'a single room a single book'을 모토로 일주일에 단 한 권의 책만 팔면서도 3년 넘게 살아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동네 서점의 큐레이션과 이런 서비스적 차원의 다양한 시도들이 좀 더 특색 있게 어우러진다면 결국 사람들은 책의 종류나 종수와 상관없이, 설령 같은 책일지라도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보다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책을 팔 것인가보다 어떤 서비스를 팔 것인가를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권희진 디어마이블루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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