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군사기지와 평화의 섬' 공존 가능할까

제주 '군사기지와 평화의 섬' 공존 가능할까
문 대통령 "해군기지는 전쟁 아닌 평화 거점"
강정마을 갈등 해소·차기 정상회담 개최 후
'세계 평화의 섬 제주' 브랜드 활용 가능성도
  • 입력 : 2018. 10.11(목) 19:51
  • 표성준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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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 이어 강정마을 주민과의 간담회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해군기지 건설 확정 후 11년째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회 갈등 사례로 지목되고 있는 강정마을과 제주해군기지를 방문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문 대통령은 미 핵 항모가 함께한 관함식에서 세계 평화를 향해 출발하자고 강조해 차기 정상회담의 제주 개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들은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면서도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 강정마을 갈등 원죄

 제주해군기지는 2007년 참여정부 때 건설 계획이 확정된 후 마을공동체를 파괴시키고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탄압하면서 수많은 전과자를 양산해냈다. 11일 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이 가장 먼저 해결을 요구한 내용도 강정 주민에 대한 사면복권이었다.

 강 회장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구상권 청구를 철회하면서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의 단초가 마련됐다. 이 자리를 빌어 대통령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하지만 사법 처리된 강정 주민에 대해 사면복권 등 아무런 구원 조치가 없는 실정이다. 강정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고 400년 마을 역사 속에 키워온 화합과 상생의 공동체 정신을 다시 꽃 피우기 위해서는 사면복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강 회장은 "공동체 파괴의 책임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공동체 파괴의 갈등과 고통을 오늘 대통령님의 강정마을 방문을 계기로 모두 잊고 이제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며 "지역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제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강 회장의 지적처럼 참여정부 비서실장을 지내 갈등을 일으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 대통령은 강정마을회를 비롯해 도의회와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대로 당초 제주 개최가 불투명했던 국제관함식을 제주에서 열기 위해 이용선 시민사회수석과 한병도 정무수석 등을 잇따라 강정마을과 제주에 급파하는 등 공을 들여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어디에서 열릴 것인지 논란이 있었고, 부산이나 진해로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대통령은 처음부터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하는 게 좋겠다. 꼭 참석하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밝혔다"며 "설사 가다 돌아오더라도 제주에서 하는 관함식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 세계 평화 전진기지

 참여정부는 2005년 4·3의 역사적 아픔을 딛고 화해를 통해 과거사를 정리한 모범지역이라면서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2년 만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확정해 제주를 평화의 섬과 군사기지가 공존하는 정체 불명의 변방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이번 국제관함식을 군사기지가 전쟁이 아닌 평화의 수단임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1일 관함식에 앞서 개인생각임을 전제한 뒤 "한반도가 힘이 없을 때는 열강의 각축장이었지만 최근엔 우리가 중심이 돼 문제를 풀어 한반도가 평화의 땅이 되고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심축이 됐다"며 "우리가 힘이 있을 때는 제주해군기지가 평화의 거점이 될 수 있도, 그런 연장선에서 관함식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역시 관함식 연설을 통해 "저는 이곳 해군기지를 전쟁의 거점이 아니라 평화의 거점으로 만들 것"이라며 "오늘 국제관함식은 한반도 평화를 알리는 뱃고동소리가 될 것이다. 이제 평화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태평양을 향해 출발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강정마을 주민과의 간담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통해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가 웬 말이냐는 반대의 목소리가 있지만 군사시설이라 해서 반드시 전쟁의 거점이 되라는 법은 없다"며 "하와이는 세계 최대의 해군기지가 있지만 평화의 섬으로 번영을 누리고, 남북이 최일선에서 부딪쳤던 판문점은 4·27 정상회담 이후 평화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관함식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대해서도 "관함식을 통해 부산이 아닌 강정을 세계에 알리고, 크루즈 입항에도 도움이 되고, 강정 주민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관함식을 반대하리라는 예상을 충분히 했지만 설득을 통해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말로 군사기지와 평화의 공존이 가능함을 강조했다.

# 반대 운동 여전… 절반의 평화

 문재인 대통령은 자연인 신분일 때부터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수시로 제주를 찾아 한라산과 오름, 숲길을 등반할 만큼 제주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3차 남북정상회담 중인 지난달 20일 백두산 천지에 올랐을 때 미리 준비한 제주 삼다수의 물 중 절반을 천지에 붓고 나머지 반을 천지물로 채우는 '합수 이벤트'도 선보였다. 차기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과의 한라산 등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평화 메시지를 발표한 데 이어 제주 정상회담이 실현된다고 해도 '강정마을의 평화'와 '평화의 섬과 군사기지의 공존'이 순식간에 이뤄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1일 문 대통령과 강정마을 주민 간담회에 앞서 간담회 참여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선 2007년 4월 이전부터 강정마을에 거주한 자로 제한해 "평화활동가들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했다"는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청와대는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마을회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간담회장 밖에선 강정마을 반대 활동 역사의 대표적 인물인 강동균 전 마을회장 등이 경찰과 충돌해 강정마을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줬다.

 이날 간담회에 참가한 한 주민은 "전반적으로 좋은 분위기였고, 질문과 요구 사항 등에 대답하려는 모습을 보여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강정마을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어서 좀 아쉬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강정마을 주민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해군기지 앞바다에서 국제관함식이 열리는 동안 해군기지 인근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특별취재팀=표성준·송은범·조흥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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