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가을 하늘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가을 하늘
  • 입력 : 2018. 10.10(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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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어느새 멀리 달아나 버리고,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을 느낀다. 가을 하늘은 눈부실 정도로 푸르고 높다. 가을하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저 깊은 여유로움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다시 되돌아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고, 인간도 수명을 다하면 떠나가듯이, 모든 것은 변화하고 소멸하게 된다. 인간이든 생명이든 시간이든 이 세상에 영원하거나 완벽한 것은 없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우리는 매사에 조금의 여유도 없이 완벽한 삶을 살고자 한다. 세계의 어느 국민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완벽주의를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다. 완벽주의는 무언가 이루기를 원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신념이다. 자신을 향해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보다 높은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이런 끈질긴 삶의 태도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가 오늘날과 같은 정도의 경제적 성취를 누리고 사는 것은 모든 국민이 빈틈없이 성실하고 완벽하게 살아온 결과가 아닌가 한다. 완벽주의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완벽주의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에는 자존감과 성취가 증가하는 긍정적인 면을 갖는다. 하지만 반대로 작용할 경우에는 성취에 대한 지나친 압박이 증가하거나 과도한 경쟁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로 인해 결국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삶의 여유로움과 빈틈을 갖지 못하고 살게 된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아름다운 문양으로 섬세하게 짠 카펫에 의도적으로 흠을 한둘씩 남겨 놓는다. 한 치의 흠도 없는 양탄자는 오히려 완전한 편안함을 가져올 수 없다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그것을 '페르시아의 흠(Persian flaw)'이라고 부른다.

인디언들은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일부러 깨진 구슬을 중간에 하나씩 꿰어 넣고,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 한다. 한 점의 흠집도 없는 구슬로 꿰어진 목걸이에는 영혼이 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고 완벽 속에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디언의 믿음이다.

제주도의 돌담을 살펴보면, 돌과 돌 사이를 완벽하게 메우지 않고 일부러 엉성하게 빈틈을 두고 그 틈새로 바람이 지나가게 한다. 외견상으로는 엉성하기 이를 데 없이 보이지만, 제주 돌담은 여간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제주도의 돌담처럼 내 마음의 빈틈을 보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빈틈을 받아들일 때야말로 태풍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세상살이의 지혜가 생겨날 수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를 내주는 사람이야말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우리는 완벽한 사람보다 어딘가에 조금 모자라고 부족한 듯이 빈틈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과 인간미를 느낀다. 일상 속에서 완벽을 쫓아가기보다는 때로 '중용(中庸)의 미덕'이 지혜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누구나 크고 작은 흠과 허물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아집에 사로잡히고, 남의 허물과 흠을 찾는 데만 익숙하면 부정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신의 흠을 수용하며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세가 아닌가 한다. 자신의 허물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창연한 가을 하늘 같은 인생역전을 일궈낸 사람들에겐 남모를 뜨거움과 감동이 있다. 그들은 허물을 잘 다듬어서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 낸 연금술사의 지혜를 지니고 있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은 우리에게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삶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일러준다.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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