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신의 하루를 시작하며] 농용수

[강문신의 하루를 시작하며] 농용수
  • 입력 : 2018. 10.10(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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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늦게까지 귤나무를 심었다. 그 순이 뾰족 날 무렵부터 시작된 가뭄은, 무더위와 함께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기어이 순들이 마르기 시작한다. 서둘러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는데, 혹시나? 했던 농용수가 역시나 안 나온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나무들의 비명(悲鳴) 그 몸부림… 어찌할 것인가. 속수무책의 가슴은 실로, 그 나무들보다 더 타는 것이다.

농장 소재지는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수도는 걸었다 말 뿐이지, 며칠만 비 안 오면 물이 잘 안 나온다. 갯날에 한번 톳날에 한번 물 구경하는데, 그마저도 전봇대에 개 오줌 싸듯 찔끔 거린다. 농사에 도움보다 스트레스가 몇 곱 더 쌓이는 것이다. 한 여름 소독준비 다 하고 농장에 갔을 때, 물이 한 방울도 안 나온다고 생각해보라. 땀 뻘뻘 흘리는 그 마음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그렇다고 소독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이웃마을 신흥리로 달려가서 사정사정 겨우 물 좀 얻어다가 소독하는 형편인 것이다. 물 얻어 오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무슨 염치로 매번에 바쁜 사람 불러내어 물 달라고 할 것인가.

이곳은, 처음부터 물 안 나오는 데가 아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물이 아주 세게 잘 나왔었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었기에 이 지경이 되었나. 분명 그 원인이 있을 터, 당연히 그에 따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세상, 상황이 점차 좋아지기는커녕, 좋았던 것이 이렇게 나빠져도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이런 데가 과연 한남리 한 곳 뿐일까? 선거 때마다 무슨 복지니 편의니 나발이니 목청만 높이다가 끝나면 대개 유야무야로 끝나곤 한다. 큰 욕심도 아니고, 그저 마음이라도 편히 농사지을 수 있게, 농용수 만이라도 좀 잘 나오게 해주었으면 하는 게 농가들의 간절한 바램이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가뭄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속절없이 말라죽어가는 자식같은 나무들을 아~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비가 오기는 왔다. 한 시름 놓는가했더니, 그 해갈의 기쁨도 잠시, 이번엔 400㎜ 비가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5㎜에서 20㎜ 온다고 일기예보 한 바로 그날, 그렇게 많은 비가 온 것이니, 어이가 없지만 또한 어찌할 것인가. 그 가뭄을 용케도 견뎌낸 드문드문 그 나무들마저 휩쓸려버린 것이다.

해마다 가뭄 끝에 이어지는 태풍 물난리…. 공식적인 그 연례행사에 희생된 나무들의 빈자리가 쓰리고 아프지만, 그래도 끝까지 벼텨낸 나무들이 용하고 고마운 것이다. 고추잠자리 유유히 나르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심상하게 가을은 또 왔다. 주렁주렁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린 감귤은 그나마 위안이다. 이제사 그 고난의 날들마저 다 긍정하면서 훌훌 털고, 올 농사 마무리에 가을걷이에 분연히 나서야할 때다. 다시 시작해야할 때인 것이다.

0형, 농장의 여름 한낮 겹고 겨울 땐, 시선암(詩禪庵)에 듭니다. 암벽의 고목터널 돌탁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비로소 살 것 같아요, 딴 세상처럼 시원한 것입니다. 실금만한 암벽의 틈새를 비집고, 맨살로 뒤엉킨 저 뿌리들… 극한을 버티는 나무들, 내색 않고 넉넉히 그늘 드리우는 나무들, 뭇 새도 포근히 깃들이는 저 늙은 나무들…. "웬만 일에 입 다물라"이릅니다. 다들 나름의 사연을 안고 사는 세상, 법석 떨 일이 뭐 있냐며 한사코 "나대지 마라, 쉬지 마라"이릅니다. 그저 묵묵히 제 길을 가라 이르는 것입니다.

0형, 새소리 들리네요. 멀리 성당의 종소리도 들려요.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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